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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ul 04. 2018

독일 내 악덕 한인 업체들

해외에서 살면서 가장 속상할 때는 나 또는 지인이 한국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때이다. 외국인에게 받는 상처보다 같은 한국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더 깊이 마음을 찌르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으로 가득한 땅에서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한 사람만 만나도 어쩐지 큰 벽 하나를 허문 것 같이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한국 사람이야'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싫어하지만 행여나 소수의 양심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수의 좋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비록 듣기 좋지 않은 이야기라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생 신분이 아닌 워킹홀리데이 또는 취업준비생 신분으로 독일에 오게 되면 부족한 외국인이나 독일에 대한 정보 때문에 초반에 일자리를 찾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몇 번의 고배를 마시면 불리한 조건이라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고자 하는 절실함이 커지게 마련이고, 이럴 때 문을 두드리기 비교적 쉬운 곳이 한인 업체이다. 문제는 이런 청년들의 절실함을 이용해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리는 한인업체들이 있다는 것이다. 독일 노동법이나 평균 근로 환경을 알지 못하는 초보 구직자들은 행여나 입사 후 부당한 대우라는 생각이 들 때도 고용주를 고발하거나 맞서 싸우는 방법을 몰라 혼자 상처받은 채 그만두거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한다. 간혹 부당 고용을 일삼는 업체들에 대한 고발성 글들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올라와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그런 글은 금세 지워지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독일 내에 한인업체는 대게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뮌헨 같은 대도시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 중견기업 이상의 해외 지사들은 대게 노동법을 잘 지키는 편이다. 현지법과 사정을 잘 아는 독일인 직원을 주요 부서에 고용하는 경우가 많고, 노동법을 어겼을 때 어떤 골치 아픈 일이 수반되는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게 노동법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은 소규모 영세 기업이다. 주 고객이 독일에 있는 한인, 또는 한국 기업을 상대하는 것이라 근무하는 직원이 모두 한국인인 경우가 많다. 이 업체들은 독일 노동법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혹 알더라도 아직 닥치지 않은 사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보다는 현재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여 싼 값에 저렴한 노동력을 구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물론, 고용주 입장에선 독일로 일하러 오겠다는 사람은 자꾸 늘어나고, 독일어가 미숙하고 경력이 별로 없는 아마추어 입사지원자들에게 굳이 좋은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도 일할 확률이 높으니 별 어려움이 없다. 열정이라는 단어를 ‘내 돈 주고 고생을 사서라도 하겠다’는 각오쯤으로 여기는 착한 한국인들이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고용주를 대상으로 싸움하는 것을 싫어해 ‘똥 밟았네 에이 좋은 경험한 거야! 다음부터 이런 곳에서 일 안 하면 돼’라는 마음으로 자기 선에서 문제를 끝내 버리니 고용주 입장에서 이래저래 걱정할 일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가장 흔한 잘못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최저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배송, 구매 대행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프랑크푸르트의 한 업체는 채용 공고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나오는 곳이다. 아침 근무는 7시 30분부터 시작, 저녁 퇴근은 6시. 이미 정규 근무 시간 8시간을 초과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에 재택근무를 해야 하고 또 종종 저녁 6시에 미팅을 소집한다. 점심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오전 업무가 끝나면 빠르게 재주껏 먹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을 리 없다. 계약서가 없으니 직원을 해고하는 것도 아주 쉽다. 한국에서 데려온 직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하여 강제 귀국시키는 결단력도 있다. 독일을 잘 모르는 젊은 친구들이 와야, 조금 더 힘든 일이 있어도 이 악물고 버틴 다는 생각에서인지 ‘해외 취업’이라는 이름 좋은 명목 아래 제 돈 주고 비행기를 타 멀리까지 오게 만들어놓고는 무책임하게 버리는 꼴이다. 이 모든 행위는 한국에서는 가능했을지언정, 독일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이다. 


한 아시아 슈퍼마켓은 이미 구인 공고부터 우리는 노동법을 준수할 의지가 없다고 광고를 한다. 그 공고에는 ‘풀타임 근무, 휴일 별도 없음. 일요일을 제외한 국가 공휴일을 휴무일로 지정함’.이라고 당당히 소개한다. 풀타임 근무자에게 휴일이 없다는 것은 완전히 독일 노동법에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지원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소지한 사람들을 참 많이도 채용했다. 종종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료되면 취업비자 발급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런 사례는 아직까지 보질 못했다. 이 채용 공고를 본 뒤 하도 어이가 없어 기재된 인사 담당자 이메일로 항의 메일을 보냈다. 물론, 한 글자의 답변도 받지 못했지만 다음날 확인해보니 공고에 적혀있던 휴일 관련 문구만 쏙 빠져있었다.  


뮌헨 근교에는 최악의 회사가 있다. MBA나 석사를 소지한 사람을 선호한다면서 말도 안 되는 고스펙 지원자를 찾아대지만 노동법은 물론, 독일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탈세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곳이다. 취업 비자를 지원해주기로 해놓고 한참을 해주지 않아, 노동자가 비자 없이 불법으로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은 애교다. 소득을 모두 동유럽으로 신고하고, 독일의 사무실은 창고로 신고해 소득세를 내지 않는 탈세를 저지른다. 동유럽에서 채용된 직원의 월급은 동유럽 계좌로 붙여준다. 한국 직원에게는 월급의 일부를 독일 계좌로 지급, 나머지는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모아 놓았다 동유럽의 계좌로 붙여 준단다. 너무나 비상식적이라 듣는 내내 헛웃음이 날 지경이지만, 이 곳에서 1년 가까이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낸 후배가 있었다. 회식이랍시고 직원들을 데려가 감자튀김만 세 개를 시켜 놓고 먹는 얘기 따위는 코미디 빅리그에나 보낼 만한 에피소드이다.  


요즘은 신종 번역 사기도 온라인 상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조금이라도 용돈을 벌어보고자 노력하는 가난한 유학생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더욱이 괘씸하다. 페이스북에 활성화되어 있는 유학생 네트워크에 번역 아르바이트 공고를 올려 신청자를 받고, A4 용지 한 장 분량의 테스트 번역을 요청한다. 이 테스트 번역을 여러 명의 지원자에게 요청 한 뒤 번역본을 모두 받은 후 잠수 타는 것이다. 그냥 한 사람에게 번역을 맡긴 뒤 번역비를 지급하지 않고 토끼는 경우도 물론 있다. 이런 경우 한국에서 구인 광고를 내거나 독일에서 내더라도 온라인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에 잠수를 타면 유학생들이 고소하기가 쉽지 않다.  


남의 돈 벌어먹고 일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 모르는 사람 없다. 공짜 밥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회사를 위해 내 노동력을 제공하겠다는 젊은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게 어려운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익숙하지도 않은 낯선 나라에서 생활하는 게 얼마나 힘든 지 알면서 자식 같은 청년들을 응원하고 힘을 주지는 못할 망정 저렴한 값에 부려먹고 배 불리는 업체들은 그래서 더 밉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도, 내 선에서 끝내자는 마음보다 뒷사람을 위해 근로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절실하다는 핑계로 이런 곳에서 일을 지속하며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말했듯, 내가 받아야 하는 정당한 대우를 스스로 지켜내도록 두터운 자존감을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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