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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ul 11. 2018

한국 기업 해외 법인의 현지 채용에 대한 오해와 진실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 법인의 뚜렷한 특징은 조직 내 복잡한 정치적 관계이다. 주재원 - 현지 직원 - 현지에서 채용하는 한국인 직원  본사 직원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말한다. 


현지 채용 한국인의 지위에 관한 인식이 대부분 부정적이다 보니 "정말 현지 채용은 그렇게 대우가 안 좋은가요?" 하는 질문을 받고는 했다. 독일에서 유학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하려는 사람 중에는 내가 지나온 루트처럼 한국 회사를 초기 진입 목표로 삼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특히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나는 독일에 오기 전 멕시코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독일의 한국 기업에 대해 특별히 기대한 것도, 실망한 것도 없었다. 다만 주재원의 권력이 너무나 막강했던 멕시코 회사와는 달리 독일의 한국 기업은 각기 다른 직원들 간의 관계와 갈등이 훨씬 복잡하고 미묘했다는 것이 매우 달라 흥미로웠다. 직접 근무한 회사 외에 프랑크푸르트나 뒤셀도르프에 위치한 한국 대기업 해외 법인에서 근무한 지인들의 경험담을 합쳐 현채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해보고자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최근 대부분의 유럽 법인들이 주재원의 비율을 줄이는 경향이 높다는 점이다. 과거와 비교하여 주재원 파견 기간도 2년에서 길게 4년으로 많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원을 한 명 파견할 때 드는 비용이 워낙 많고, 오랫동안 체류한 주재원이 한국으로 복귀해야 할 시점에 퇴사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다!), 직원들의 언어 소통 능력이 늘어 남에 따라 주재원을 굳이 보내지 않고도 현지 직원을 채용하여 소통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축적된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재원이 현지에 적응하여 비즈니스를 파악하는 것보다 이미 현지 비즈니스를 꿰차고 있는 현지인을 채용하여 자사 비즈니스에 대해 교육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더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이다. 


직원들의 관계는 물론 회사마다 차이가 있다. 주재원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회사(예컨대 프랑크푸르트 S사, K사) 가 있고 현지인이 결정권자인 경우도 있다. 본사가 어떠한 경영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는가, 법인의 성격(영업 법인인가, 재고/운송 법인인가 여부) 법인의 최고 관리자가 누구인가, 주재원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 CEO가 얼마만큼 법인 경영에 관여하느냐 등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다양하다. 


해외 법인의 가장 흔한 구조는 한국인이 법인장으로 있고, 부서 또는 팀에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을 주재원으로 두며 이외 실무라인 직원을 현지인, 현지 채용 한국인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독일에 있는 법인은 유럽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한 영업 법인이 많은데 이 경우 유럽 고객과 직접 소통해야 하는 필드 영업을 현지인으로 그리고 그 현지인을 서포트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현지 채용 한국인으로, 현지인과 현지 채용을 관리하는 중간급 관리자 역할을 주재원으로 구축한 곳이 많다. 주재원을 중간급 관리자로 두려면 대게 과장급 이상을 파견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현지 채용 한국인은 현지인과 주재원, 본사 직원 사이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비중 있게 맡게 된다. 물론 그 덕에 이리저리 많이 치인다. 더불어 현지 채용 한국인의 직속 상사가 한국인인 경우가 많아 아무래도 근무 문화나 대우에서 한국식을 따라가는 경향이 많다. 더불어 이런 구조의 회사에서는 주재원은 주재원끼리, 현지인은 현지인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강하다. 


뮌헨에서 근무했던 법인은 조금 달랐는데, 이곳은 앞서 말했듯 법인의 최고 관리자와 팀장급이 현지 독일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간 관리자의 주재원이 본사와의 소통, 실적 보고, 영업 서포트를 담당하여 서로 간의 힘겨루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본사를 공동의 적으로 삼고 함께 흉을 보기도 하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서로 으쌰 으쌰 일을 하다가 돌아서면 '망할 독일인들', '망할 한국인들' 하며 욕을 해대곤 했다. 그리고는 또 서로가 필요할 때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애증의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가장 큰 장점은 현지 채용 한국인이 보다 독립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재원과의 소통도 보다 수평적이고, 현지 직원과의 유대감이 크다. 


앞에서 말한 두 가지 형태를 불문 파워 게임은 대체적으로 아래와 같이 이루어진다. 

1) 주재원: 본사로부터 중요한 정보들을 가장 빠르게, 많이 입수하는 것은 주재원! (한국인인 데다 본사 인맥이 빵빵하니 당연) 이 정보를 무기로 파워 게임 주도. 아무래도 현지에 전달되는 정보는 많은 부분 필터 되므로, 정보의 질과 양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음. 본사에 이슈 관련 보고 시, 가장 편리하게 현지인 탓을 함. 


2) 현지 직원: 현지의 영업, 고객 관련 정보들을 가장 빠르게, 많이 입수하는 것은 현지인! (언어 + 현지 비즈니스와 문화 이해도는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음). 이 정보를 무기로 파워 게임 주도. 물론 본사나 주재원에 전달되는 정보는, 정보의 질과 양이 떨어짐. 본인이 원하는 정보만 공유하고 모른 척할 수 있음.  본사에 이슈 관련 보고 시 주재원이나 본사 직원의 서포트 부족을 가장 많이 탓함. 


3) 현채 한국인: 주재원에게 가는 정보와 현지인에게 가는 정보 둘 다 쉽게 취득할 수 있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음!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요리조리 잘 가공하고 적시 적소에 전달하여 중간 다리 역할을 잘 해내면 인정받기 쉬우나 서포트 포지션이라는 약점과 '네가 중간에서 의사 전달 잘못해서 그렇다'라고 다 뒤집어쓰고 욕먹기도 쉬운 샌드위치 같은 존재.  


4) 본사 직원: 법인장도 월급 사장이니 언제든 잘릴 수 있고 해외 법인은 언제든 문 닫을 수 있으나 본사는 영원하다는 신념 아래 큰소리는 치지만 동시에 본사에서 서포트를 안 해줘서 현지 경영이 어렵고 실적이 좋지 않다고 하면 필터 없이 위에서 바로 짓밟힘. 현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욕은 먹을지언정 수위가 약한 편. 해외 법인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부러워하는 한 편 눈에 안 보이는 골칫거리라고 매우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음. 


현채 한국인은 거의 대부분 지원 포지션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이런 업무들은 반복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현채인이 무시당한다, 지위가 바닥이다라는 말이 생겨나는 것 같다. 대놓고 말해 현지인처럼 실적이나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본사 직원이 아니니 회사 입장에서는 크게 투자할 이유가 없으며, 포지션 역시 오랫동안 일하면서 전문적인 경력으로 발전시키기 어려워 독일 기업으로 이직 성공한 사람들의 숫자도 아주 작다. 따라서 2년 정도 일을 하면 슬럼프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내가 이러려고 독일에 왔나? 나는 분명 독일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쩜 이렇게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 같지? 언제까지 내가 뒤치닥 거리를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워진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업에서 이런 포지션을 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그러나 소문이 불필요하게 부정적으로 과장되어 있는 면도 있다. 현채도 일 잘하면 당연히 인정받을 수 있다. 가끔 빠른 눈치와 정보력으로 주재원과 현지인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면 본인의 역할이 훨씬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기업에 가면 부서 변경이나 승진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 엄청나게 빠른 눈치력과 정보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회사마다 케이스가 다르니 본인이 독일에 있는 한국 기업에서 근무하기로 이미 결정을 했다면 현채인이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로 미리 걱정을 하지 않기 바란다. 다만 지원 시에 면접을 통해 회사의 분위기가 어떠한지, 누가 나를 면접하는지, 인사와 조직 구조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최대한 많이 파악하고 오는 것이 좋다. 입사 뒤에는 주재원과 현지인, 본사 중 누가 현지 업무에 관한 결정권을 많이 가지고 있는 지를 파악한 뒤 본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기를 조언한다. 독일 취업에 도전하는 분,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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