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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ul 18. 2018

독일 회사에는 공채도, 신입도 없다

매년 봄과 가을이 되면 대기업 공채에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학 졸업생들의 피나는 노력이 뉴스 소재로 등장한다. 아직 사회에 찌들지 않은 열정 넘치는 졸업생을 대거 뽑아 놓고 교육을 시키다 기업 입맛에 맞는 부서로 배정시키는 공채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매 단계마다 지원자를 빠르게 솎아 내는 '필터링' 기술이 필요하다. 지원 가능한 전공을 제한하거나, 지원에 필요한 자격증 예컨대 토익 점수를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거나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인적성 검사를 집어넣는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지원 자격에 공식적으로 기재되어 있지는 않지만 공채에 붙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 스펙 5종, 스펙 8종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자꾸 늘어난다. 자격증이나 외국어, 봉사 활동 경력 따위가 대체 어떤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는 채용자 중 누구 하나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지만 구직자에게 주어진 선택은 많지 않다. 


독일에는 공채가 없다. 기업은 언제나 자신이 필요한 인력을 수시로 채용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포지션과 가장 적합한 인재를 찾을 것인지 고민한다. 독입 기업의 인사팀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중 하나가 'Talent specialist', 'Talent acquisition partner' 'Career development partner', 'Recruiting specialist' 등의 이름이 붙은 채용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나오는 수시 채용 포지션과 지원자들의 정보를 확인하고 1차 필터링을 하느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채용에 소요되는 시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길다. 서류 검토부터 여러 차례의 대면 면접, 채용 조건 교차 확인 및 계약서 사인까지 기본으로 3개월이 소요된다. 그래서 지원서를 낸 지 반 년이 되어갈 때쯤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탈락 안내 이메일이 오기도 한다. 반대로 2년 전에 지원한 회사에서 당시 지원한 포지션은 아니지만 새롭게 오픈된 포지션에 어울릴 것 같다며 연락이 오는 일도 있다. 정말 농담이 아니다. 독일 채용 담당자들, 정말 열일 하는 구나 싶지만 기다리는 지원자는 여유가 없다면 피가 다 말라버렸을지 모른다. 


공채와 마찬가지로 독일에는 근무 경력이 전무한 신입 사원도 없다. 대학 또는 대학원 재학 중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일정 시간만큼의 일을 해야만 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세 가지는 워킹 스튜던트, 인턴 그리고 트레이니다. 워킹 스튜던트는 재학 중 제한된 시간만큼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학생들이 졸업 논문 작성을 위해 자신의 학업과 관련 있는 기업에서 근무하며 논문 지원을 받는다. 인턴 역시 재학생 신분이어야 하고 풀타임 근무가 가능하지만 대게 3개월 ~ 6개월 정도로 근무 기간이 짧게 제한되어 있다. 트레이니는 학사나 석사를 마치고 최소 1년 이상되는 기간 동안 일을 배우고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의 신입 사원과 가장 하는 일이 비슷하다.  트레이니의 경우 계약 기간이 끝난 후 정규직 제안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이 세 가지 외에 아우스빌둥 같은 장기 직업 수련 프로그램도 있지만 조건이 조금 달라 여기서는 간단히 언급만 하겠다. 따라서 독일에서 신입이란 최정 학력을 완전히 수료한 뒤 첫 직장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경력 같은 신입을 뽑는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채용 조건은 독일에서만큼은 현실이다. 


독일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공과 경력이다. 학교의 이름이나 인턴을 했던 회사의 규모가 아니라 그곳에서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떤 논문을 썼으며 어떤 일을 했는가를 가장 심도있게 확인한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지금 지원하는 분야와 얼마만큼 연결되어 있는가가 확실해야 한다. 예컨대 같은 파이낸스 팀에서 워킹 스튜던트로 일한 경력이 있더라도 그곳에서 담당한 업무는 자금이고 현재 지원하는 포지션은 인수합병과 관련한 재무 담당이라면 서류에서 다른 경쟁자에게 밀릴 확률이 높다. IT 전문가라도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의 전면 개발인가 아니면 서버, 시스템 인터페이스 구축 경력이 많은 가에 따라 확률이 크게 차이가 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이력서에 자신이 맡았던 프로젝트와 업무를 비교적 상세히 기재하는 편이다. 시간이 금인 독일인에게 지원 포지션과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사람을 초대해 그들의 열정을 들어줄만한 여유는 없다. 컨설턴트가 아닌 이상 멀티플레이어보다 한 분야에 일관성과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추구하는 독일의 문화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입 공채가 없으니 입사 동기나 입사 연수 프로그램도 자연히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을 뽑고 나면 회사 규정과 복리 후생을 설명해 주는 간단한 입사 오리엔테이션을 제공해 주는 회사는 종종 있지만 직무 교육은 소속 팀에서 자체적으로 담당한다. 그래서 한꺼번에 수십 명 연수를 보내 1-2주 정신 교육을 하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독일인들은 하나같이 상상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 큰 성인을 한 프로그램에 가둬 놓고 제어한다니 아마 그런 걸 이 곳에서 어떤 기업이 했다면 첫날 회사를 떠나는 입사자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란다. 회사 차원에서도 그 많은 직원에게 실무와 관계없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낭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전에 근무했던 멕시코에 있는 한국 회사의 경우 주재원으로 파견되기 전 안산으로 1주일간 연수를 보내주었다. 첫날 연수원에 도착하니 빨간 모자와 호루라기를 쓴 추억의 교련 선생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서른이 가까워 오는데 교련이라니 헛웃음이 나지만 막상 미션이 주어지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짐만 던져 놓고 3시간짜리 등산 코스를 시작한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저녁 회시 장소로 향한다. 밤새 소주를 마신 뒤 다음날 오전 7시에 기상 후 아침 체조를 시키고, 체조가 끝나자마자 해장국을 먹이더니 바다낚시를 데려간다. 회식 뒤 오전 바다낚시란 누가 토 안 하고, 설사 안 하고 잘 버티느냐라는 지상 최대의 미션을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낚시하는 동안 회사 간부는 온갖 낚시 용어를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으며 내 언어 실력을 테스트했다. 사막의 나라 멕시코에서 낚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통역할 확률이 뭐 얼마나 되겠느냐만 바다 낚시야 말로 직원의 정신력과 체력, 지적 능력을 한꺼번에 평가하는 날카로운 미션이라는 사장님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런 사원 연수 프로그램을 BMW 같은 독일 회사가 획기적으로 시도해본다면 어떨까, 정말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독일에서 신입은 그저 경력이 남들보다 적은 사원이다. 잔심부름꾼이나 막내는 아니다. 모든 팀원의 복사, 문서 정리, 점심 식당 예약, 회의실 뒷정리, 회의록 작성, 전화받기 등등할 일이 한도 끝도 없는 우리나라의 신입에 비하면 양반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회사는 이들이 어떤 역량이 있는지 어떤 성격과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지 팀장이 파악할 때까지 한꺼번에 많은 업무를 주지는 않으며 여러명의 윗 사람이 일을 주지도 않는다. 팀원의 경우 팀장에게 업무 지시를 받고, 팀장급 이상은 자신의 직속 상사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나머지 팀원들은 그 직원이 적응하고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된다. 새로운 직원이 나보다 후배라는 이유로 내 업무를 맘대로 넘겨줄 수는 없다. 본인의 일이 많은 경우엔 업무 분담 재량권을 가진 팀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가 다른 팀원과의 논의를 통해 업무를 넘겨받을 사람을 공식적으로 지정해 주어야 한다.  


물론 독일의 신입 사원이 모든 면에서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수와 부사수의 개념이 없다 보니 책임지고 자신을 이끌어 주는 선배가 없어 언제나 눈치를 보게 된다. 생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없는 입사 동기가 없는 것도 조금 외롭다. 그래서 늘 무언가 스스로 찾아 다니고, 먼저 입사한 사람들에게 미팅을 신청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상사에게 어필하지 않는 이상 조직에 적응하고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릴 확률도 높다. 이리저리 터지고 혼이 나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고 인정받기 위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족집게처럼 혼내는 사람이 없고 자꾸만 스스로 고민하도록 질문을 던져주니 고민과 고뇌의 시간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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