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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종결자 Jul 25. 2018

독일 회사는 소설가보다 기자를 원한다

취준생이 가장 싫어하는 것, 몇 시간을 투자해도 결국 마지막엔 항상 마음에 들지 않는 그것은 '자기소개서(자소서)'이다. 취업 준비생 시절 우리가 써 내려간 수 백장의 자기소개서를 모아 놓으면 마치 한 권의 근사한 소설, 아니, 누군가의 위인전을 읽는 것 같다. 게다가 지원했던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에 맞추어 나란 사람을 재 창조한 탓에 자소서를 두세 개만 합치면 어느덧 이 위인은 다중인격자가 되어 버린다. 그래도 어쩌랴, 이력서보다 자기소개서가 중요하다는 대기업의 인사담당자의 구라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 말을 믿고 허접한 이력서를 보충할만한 대단히 인상 깊은 자소서를 매번 고안해낼 수밖에! 


면접도 자소서의 연장선이다.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질문이 쏟아진다. 질문자의 구미에 딱 맞는 답변을 멋지게 꾸며내어 감동을 주려면 나란 사람은 잠시 잊어야 한다. 심지어 승무원을 뽑는 한국의 항공사 실무 면접에서 지원자 한 사람 당 질문을 두 개씩만 하고 돌려보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결국 그 사람들은 '만들어진 인상'으로만 평가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독일의 커버레터는 우리의 자소서와는 많이 다르다. A4용지에 1/3에서 반 정도 간결하게 이 회사에 지원하는 이유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간단히 적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에 관심이 많으며 무엇을 잘하는지 따위는 이력서에 녹아 있어야 하므로 자소서에 구구절절 써 내려갈 필요는 없다.  따라서 미사여구로 꾸며내거나 억지로 감동을 주기 위한 소설은 오히려 마이너스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국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독일 회사 중에도 커버레터를 쓰지 말라고 하거나 선택사항으로 두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당신이 이 직무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이력서를 보고 판단할 것이며, 이외 궁금한 점은 면접에서 꼼꼼히 물어볼 테니 서로 커버레터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는 메시지다. 


이전 회사에서 후임 직원을 뽑을 때였다. 인사담당자였던 독일 여직원이 어색한 얼굴로 다가와 내게 한국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단다. 한국식 지원서를 쉽게 독일어와 영어로 번역을 해 놓은 듯 보이는 그 이력서에는 키와 몸무게, 취미와 특기가 기재되어 있고 첨부된 자소서에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글이 A4용지 1장을 빼곡히 채워 적혀 있었다. 모든 지원자가 이렇게 썼다면 아마 효율성을 칼 같이 여기는 독일 직원은 아마 1줄도 읽지 않고 지원서를 다 덮어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의 면접은 참 길고 꼼꼼하고 성실하다. 여러 명의 지원자를 불러 내어 질문 서너 개 던져 합격자를 판가름하는 일은 없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그룹 면접을 진행하지 않는다. 면접의 목적이 경쟁을 시켜 누가 나은 사람인지 가리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파악하여 채용 포지션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보니 면접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 서류에서 웬만한 지원자는 다 걸러낸다. 


서류를 통과하면 1차로 인사 담당자와 전화 면접을 거치는데 대략 30분~40분 정도 소요된다. 인사담당자는 이 전화 통화로 이력서에 쓴 내용이 확실한지와 지원자가 본인이 지원하는 포지션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가장 캐주얼한 면접이지만 통화 내용은 꼼꼼히 기재되어 이후 실무팀 면접에 참고 자료로 쓰인다. 


이후 대면 면접은 보통 2-3차례 더 진행된다. 실무팀과 한번, 관리자급과 한 번 그리고 그룹 대표나 CEO 등 기업의 가장 높은 사람과 한 번 이렇게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무자 면접은 90% 기존 경력, 지원 포지션과의 연관성을 확신하기 위한 질문과 10%의 인성 관련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종종 실무 면접에서 특정 연구 주제나 케이스 스터디를 주고 프레젠테이션을 시키기도 한다. 실무와 관계없는 시사나 상식을 묻는 일은 거의 없다. 

최근에는 이 실무 면접에서 체계적으로 구축된 논리적 상황 질문이 쓰이기도 한다. 특정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을 두세 가지 던지는 것이다. 예컨대 '프로젝트 마무리를 한 달 남겨두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 어떻게 결정자들을 설득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교육해 주세요' 하는 큰 질문을 던진 뒤, 지원자의 답변을 들으며 구체적인 질문을 더 추가한다. 이런 질문이 여러 개가 나오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맞추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 한들 어떻게든 본인의 성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며 업무 스타일, 의사 결정 과정, 상황 판단력도 함께 평가할 수 있다. 최종 관리자와 임원 면접은 리더십과 회사 비전, 산업에 대한 이해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이런 대면 면접들을 각각 1시간씩 할애하여 진행하다 보니 질문이 굉장히 자세하고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회사들은 입사 후에도 소설가를 원하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되지 않을 사업이지만 어쨌든 위에서 실행해라고 명령한 사업. 실무자는 어떻게든 멋진 말로 포장된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내야 한다. 위 결정에 동의하지 않지만 나의 판단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상사의 판단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의 조각을 맞추어 한 편의 멋진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몫이다. 사업이 망했다면 이 사업이 왜 망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이 사업과 관련된 사람 중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융통성 있게 다른 것을 탓하는 편이 낫다. 직장 생활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면 솔직함과 직선적 태도는 되도록 삼가는 것이 좋다. 내가 이 회식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오늘이 내 생일이어서가 아니라, 집에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이다. 저 부서로 발령 나기 싫은 이유는 저 악명 높은 팀장이랑 함께 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함께하는 팀장과 팀을 가족같이 사랑해서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당신이 일하는 방식과 결정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네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다른 이유를 대겠다. 오, 내가 이 직장을 때려치우는 이유는 일은 죽어라 시키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못하는 못난 리더들 때문이지만 멋들어지게 '자아성찰'과 '자기계발'을 섞어 가며 퇴사 면담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독일 회사는 실무에서도 기자를 선호한다. 팩트 체크와 논설을 담당하는 직원 말이다. 소설을 들어줄 만한 여유와 시간이 별로 없다. 미팅을 할 때나 보고를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어야 하고, 그 메시지를 팩트로 포장해야 한다. 과장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함께 일하던 미국인 마케터는 독일 사람들이 감성과 창의력이 가장 많이 요구되는 마케팅이나 디자인 업무 조차 합리성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심금을 울리는 카피 라이트나 브랜딩을 찾기 어렵나 보다. (여담으로 독일 회사 이름은 그냥 회사를 지은 설립자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쓴 곳이 아주 많다. 독일 디자인은 그야말로 미니멀리즘이다!)  


이를 위해 회사는 직원에게 끊임없이 의견을 묻고 토론을 시킨다. 뭐 하나 일방적인 결정이 없으니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진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이라 확신을 줄 수 있는지 않은지를 고민하게 되어 정신적 피로감이 높다. 발표하는 내용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없는 것 같으면 "확실해? 그 정보는 어디서 들은 거야? 다른 부서와 이 수치에 대해 교차 점검했나? 왜 A통계를 이용했어-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B 통계를 사용했는데 일관성이 없지 않아? 프로젝트 이름을 이렇게 짓는 게 최선일까?"라며 메시지의 근거를 확실시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댄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회의할 때 가만히 앉아 말없이 듣고만 있는 사람을 무임승차자라고 표현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다. 물론, 독일 회사가 이래서 좋다는 소리는 아니다. 논의 과정에 많은 에너지를 쏟다 보니 업무에 관한 결정을 하고, 실무를 추진하는 데 온 세월이 걸리는 것 같을 때도 많다. 소설가와 기자 중에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더 쉬운 것이라곤 말할 수 없다. 그저 각자가 나에게 더 잘 '맞는' 문화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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