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비단』 읽기 (1/4)
소녀가 살며시 머리를 들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에르베 종쿠르에게서 시선을 떼고 찻잔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천천히 찻잔을 돌려 에르베 종쿠르가 입술을 대었던 바로 그곳에 입술을 갖다댔다.
소녀는 눈을 반쯤 내리 깔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소녀는 찻잔에서 입술을 떼었다.
소녀는 찻잔을 원래 있던 자리로 밀어놓았다.
-『비단』중에서
『비단』은 제가 유독 아끼며 여러 번 탐독했던 소설입니다. 5년 전, 지인들과 독서 토론을 시작했을 때 첫 텍스트도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비단』이었습니다. 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마주했던 순간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표지는 제목처럼 화이트 펄빛의 비단 같은 질감을 품고 있었고, 궁체 흘림으로 단아하게 새겨진 제목은 복잡한 그림 없이 오직 글자와 여백만으로 소설 속 침묵과 비언어적인 소통의 깊은 분위기를 담아냈습니다. 그 표지를 응시하면, 19세기 고독한 프랑스 누에알 상인의 발자취와 닿을 수 없는 일본 여인의 아련한 눈빛이 서정적인 먹의 흔적을 따라 아련히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고독함과 몽환적 분위기 속에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스며든 표지였습니다.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비단』을 탐험한 여정을 이제 여러분과 기꺼이 나누고자 합니다. 이 작품은 마치 누에고치에서 피어나는 섬세한 비단실처럼, 언어의 절제된 아름다움 속에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운명적인 이끌림을 숨겨둔 매혹적인 이야기입니다. 헌책방에서 빛바랜 페이지를 넘기듯, 저는 이 소설의 행간에서 발견한 작은 빛들을 좇아 깊은 사유의 바다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운명의 실타래처럼 얽힌 삶의 아이러니를 파고들며,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은 제 마음속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정제된 문장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들을 찾아내고, 철학적 사유의 씨앗들을 발견하는 과정은 저에게 깊은 지적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이제 그 여정의 발자취를 따라, 여러분도 저와 함께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 속으로 깊이 걸어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소설 『비단』은 시적인 압축과 절제, 동양화 같은 여백과 잔잔한 리듬이 어우러진 한 편의 서사시와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시를 음미하듯, 느린 호흡으로 마음속 상상력의 문을 열고 작가의 섬세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누에는 13마디 몸통을 가진 신비로운 생명체로, 1년 열두 달과 윤달을 상징한다고 전해집니다. 누에알이 애벌레로 자라며 네 번의 깊은 잠(탈피)을 잔 후에야 실을 토해 고치를 짓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됩니다.
연약한 누에알이 마침내 비단으로 재탄생하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견뎌내듯, 주인공 종쿠르는 세상의 끝이라 알려졌던 미지의 땅 일본으로 무려 네 차례나 기나긴 여행을 떠납니다.
누에알이 사랑의 시작이라면, 번데기는 사랑의 고통스러운 과정일 것입니다. 그리고 비단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이겠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랑은 두 손으로 움켜쥔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를 부드러운 비단처럼 빠져나가 사라지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누에알 상인 종쿠르가 우연히 일본에서 마주친 한 여인에게 느끼는 지독한 욕망을 다룹니다. "사람이 애욕에 미혹되어 감각적인 욕망을 버리지 못하면 근심과 애착은 날로 불어난다"는 법구경의 구절처럼, 꿈도 욕망도 없던 한 사내의 인생에 운명 같은 '팜므파탈'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계기로, 그의 삶은 호수 위에 일렁이는 잔물결처럼 그리움과 애욕의 욕망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에르베 종쿠르는 종종 호숫가로 내려가 몇 시간 동안 고요히 그곳을 응시하곤 했습니다. 마치 호수 속에서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알 수 없는 모습들을 그 호수 위에 아스라이 그려보았는지도 모릅니다. 산들거리는 잔물결 속에서, 그는 헤아릴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되새기며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너의 욕망을 욕망하라."
프랑스의 작은 마을 라빌디외에 살던 남자, 에르베 종쿠르.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인이 되려 했으나, 발다비우라는 낯선 이의 우연한 등장으로 비단의 원료인 누에알을 구해다 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들어섭니다. 우연과 우연이 겹쳐 운명이 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키가 크고 차분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아내 엘렌이 있었습니다.
비단의 원료가 될 누에알을 구해다 파는 일을 하던 에르베 종쿠르. 유럽 전역에 누에알을 병들게 하는 잠균병이 퍼지자, 그의 대장정은 마침내 머나먼 일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종쿠르는 지방 권력자이자 사업 파트너인 하라 케이를 만납니다. 하라 케이의 곁에는 '눈이 찢어지지 않은' 유럽풍의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습니다. 하라 케이와의 첫 사업적 만남에서부터, 종쿠르와 이름 모를 '그 여인'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운명처럼 찾아온 욕망의 이끌림으로 그는 네 번이나 일본행을 반복하게 되고, 의문의 연서를 담은 편지 일곱 장을 받게 됩니다. 마침내 아내 엘렌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무덤가에 바쳐진 남색 꽃다발의 등장에 이르러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종쿠르의 어긋난 운명과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만나게 됩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다양한 이질적인 항들의 특정한 재배치로 우리는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말합니다. 점잖은 회사원이 예비군 훈련장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것도, 그들이 새로운 공간과 상황에 '재배치'되기 때문입니다.
들뢰즈는 이처럼 욕망은 언제나 특정한 '배치(agencement)'에 속하는 것이지, 개인이나 어떤 인간 주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욕망은 언제나 배치로서 존재하며, 거꾸로 배치는 언제나 욕망의 배치다."
다시 말해, 종쿠르의 욕망은 원래 그의 가슴속에 잠재해 있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과의 '만남(배치)'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라빌디외에서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던 그의 욕망은 비로소 하라 케이의 '여인'과의 우연한 '만남(배치)'을 통해 태어난 것이죠. 이처럼 우연적인 '배치'들을 통해 욕망(그리고 꿈)은 싹트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가며 남에게 "결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절대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배치' 속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상황과 사람들을 통해 우리 안의 강렬한 욕망이나 꿈이 언제든 꿈틀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욕망이 단순히 내면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더 깊이 성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편에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