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사랑, 비밀의 그림자(3/4)
이 소설은 두 여인을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닌 두 여인의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한쪽에는 눈빛만으로 남자의 영혼을 잠식해 버린 치명적인 '불꽃'이, 다른 한쪽에는 그 불꽃을 바라보며 홀로 타들어 간 서늘한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종쿠르가 일본에서 마주한 여인은 마치 활화산 같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의 땅에서, 그녀는 대담하게 종쿠르의 찻잔을 들어 그가 입을 댄 자리에 자신의 입술을 포갭니다. 그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건넨 쪽지 한 장으로 그의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돌아오시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예요."
첫 만남의 찰나에 목숨을 건 고백. 그것은 혜은이의 노래 가사처럼 "가슴 터질 듯 열망하는 사랑,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멀고 마는" 맹목적이고 원초적인 유혹이었습니다. 이 치명적인 이끌림 앞에서 종쿠르의 젊은 가슴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 종쿠르의 아내 엘렌은 고요한 호수처럼 그려집니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줄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는 마음씨 착한 여자"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바리코는 소설 곳곳에 엘렌이라는 호수 밑바닥에 감춰진 비밀들을 은밀한 암호처럼 심어 두었습니다.
그 결정적 단서는 그녀의 죽음 후 무덤가에 놓인 수많은 '남빛 꽃다발'입니다. 이 꽃은 평범한 추모의 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님(Nîmes)'의 색시집 여주인 블랑쉬의 가게에서, 정을 통한 남자들의 옷깃에 꽂아주던 은밀한 표식이었습니다. 무덤을 뒤덮은 그 꽃들은 엘렌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혹은 종쿠르만이 몰랐던 깊고 어두운 비밀이 있었음을 침묵 속에서 증언합니다.
소설은 잔인한 아이러니를 던집니다. 엘렌과 블랑쉬 부인의 관계, 그리고 엘렌이 부탁했던 에로틱한 편지는 그녀가 결코 '정숙한 여인'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남편 종쿠르에게 뜨겁게 욕망받는 여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마치 일본의 그 여인에 빙의라도 된 듯, 엘렌이 써 내려간 편지는 그녀 내면에 잠재된 뜨거운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녀는 남편이 그토록 갈망하던 환상 속의 존재, 바로 '일본의 그 여인'이 되어서라도 사랑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몸속으로 파고든 당신의 손가락. 제 입술에 닿은 당신의 혀. 당신은 제 몸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와요.
(중략)
누가 감히 지금 이 순간을 지워버릴 수 있겠어요? 당신은 천천히 제 몸속으로 들어와요. 당신의 손은 제 얼굴을 더듬어요. 당신의 손가락이 제 입 속으로 파고들어요. 당신의 눈에서, 당신의 목소리에서 기쁨이 넘쳐나요. 당신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요. 마지막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저도 환희의 비명을 내질러요.”
이 편지에는 가슴 아픈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종쿠르는 아내 엘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이 편지가 일본 소녀의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무덤가에 놓인 남빛 꽃바구니의 흔적을 좇아 블랑쉬 부인을 찾아간 뒤에야 비로소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토록 에로틱하고 뜨거웠던 편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살아생전 남편에게 그토록 사랑받기를 갈구했던 자신의 아내 엘렌이었음을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처럼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입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종쿠르의 마음은 일본의 소녀에게로 흘러가 버렸고, 엘렌의 사랑은 닿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남빛 꽃잎으로 흩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부부의 일그러진 사랑을 통해 서글픈 진실을 마주합니다.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진짜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종쿠르의 이 지독한 사랑과 방황은 과연 실패한 삶이었을까요? 아니면 '가지 않은 길'을 걸어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축복이었을까요?
다음 마지막 편인 4편 <가지 않은 길, 사랑의 잔향>에서는 종쿠르의 여정이 우리 삶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 '선택과 회한'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덮어두었던 당신의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마주할 준비가 되셨나요? 그 깊고 아련한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