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 가득한 『대지』, 내 삶의 뿌리
어린 시절, 시골 우리 집 방 한쪽엔 나무로 짠 투박한 책꽂이가 자리했다. 누나들이 한 권씩 사 모은 책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채 꽂혀 있었다. 딱딱한 케이스에 담긴 고전들—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펄 벅의 『대지』와 『북경에서 온 편지』, 미우라 아야코의 『양치는 언덕』, 그리고 토마스 하디의 『테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까지. 등교 길, 내 시선의 가장 높은 곳을 차지했던 그 책들은 국민학생 소년에겐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 같았다. 세로 쓰기로 빽빽한 그 속내를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었다.
그러던 최근, 어느 헌책방에서 70년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민트색 케이스의 책을 운명처럼 만났다. '마아가레트 밋쳘'이라는 옛 철자법이 적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그 표지를 보는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누나들의 방에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구절처럼, 50년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나는 그 책이 누나들의 방에 꽂혀있던 바로 '그 책'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표지의 '얼굴'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기억의 갈래 끝에서 마침내 『대지』를 다시 만났다. 이번 달 독서 토론 도서로 선정된 이 책을 읽기 위해 어렵게 손에 넣은 '그 옛날의 책', 누런 종이 질감은 지붕 위 구운 기와처럼 거칠었고, 해묵은 종이 냄새는 어머니의 옷자락에 배어 있던 흙내음과 닮아 있었다. 손끝에 닿는 책의 질감에서 나는 비로소 부모님의 세월을 만지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세월의 먼지가 겹겹이 내려앉은 빛바랜 다홍빛 표지는, 마치 수만 번의 해넘이를 견뎌낸 척박한 황토의 기운을 머금은 듯하다. 그 정중앙, 순백의 사각 틀 안에 붉은 혈색으로 새겨진 '大地'라는 두 글자는 투박하지만 숭고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1961년, 장왕록 교수의 유려한 문장으로 빚어진 이 낡은 판본의 냄새를 맡으면, 대지를 일구던 왕룽의 거친 숨소리와 흙먼지 날리는 광활한 중국 대륙의 바람이 피부 끝에 닿는 듯하다. 화려한 장식 대신 절제된 색채로 채워진 이 표지는,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근원적인 숙명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소설 속 왕룽이 이룬 성공은 단순히 가난한 농부가 만석꾼이 된 물질적 성취를 넘어선다. 그것은 땅이라는 근원적인 생명력에 뿌리를 내리고 가문을 세우고자 했던 한 남자의 집념이 일궈낸 승리였다. 그리고 그 승리의 가장 큰 지분은 아내 오란에게 있었다.
세상은 왕룽의 화려한 성공에 주목하지만, 그 성공을 밑바닥에서 굳건히 지탱한 것은 오란의 '지독한 침묵'이었다. 대기근의 고통 속에서 가족을 살려내고, 피난길에서 얻은 보석으로 왕룽이 다시 땅을 살 수 있게 한 침묵의 건축가. 왕룽이 땅을 사들이며 기쁨의 함성을 지를 때도, 아들들이 재산을 두고 다툴 때도 그녀는 늘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지가 비바람을 묵묵히 받아내듯 모든 고통을 스스로 삭여내는 어머니의 언어였다. 오란의 희생은 대지가 모든 것을 받아들여 싹을 틔우듯, 왕룽 가문을 지탱하는 가장 비옥한 거름이 되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20세기초 중국 농민들의 서사는 내가 지나온 1960~70년대 한국 농촌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왕룽과 오란의 모습 위로 나의 부모님이 겹쳐 보였다. 아버지는 평생 제대로 드시지도 못한 채, 매서운 바람 부는 겨울이나 불볕이 내리쬐는 여름이나 남의 집 지붕 위에 올라 헌 기와를 걷어내고 새 기와를 잇는 고된 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하늘과 맞닿은 지붕 위에서 가족의 머리 위를 막아주는 ‘수직’의 삶을 사셨다면, 어머니는 땅과 밀착하여 가족의 발바닥 밑을 지탱하는 ‘수평’의 삶을 사셨다. 아지랑이 이글거리는 뜨거운 지붕 위에서 가족의 안식처를 만들던 아버지의 뒷모습은 왕룽의 집념이었고, 가사와 농사라는 이중의 짐을 지고 등이 휘도록 일해오신 어머니의 세월은 오란의 인내였다. 하늘과 땅 사이, 그 거대한 우주를 부모님은 오직 당신들의 노동으로 가득 채우며 우리 오 남매를 키워내셨다.
소설은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투영한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땅에 집착하는 왕룽, 화려한 사치와 권력을 좇는 세 아들, 그리고 기생충처럼 가문을 갉아먹는 숙부까지. 돈으로 환산되는 '재산'으로서의 땅을 탐하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일면과도 닿아 있다.
이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룽의 말년을 지키는 소실 이화(梨花)의 존재는 유독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육체적 욕망과 화려함의 상징이었던 련화와 달리, 이화는 순수함과 돌봄의 상징이다. 거대한 지주가 되었지만 결국 노쇠하고 고독해진 왕룽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지능이 낮은 왕룽의 딸을 진심으로 보살피는 그녀의 모습은 살벌한 욕망의 서사 속에서 한 줄기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이화는 물질적 성공으로 황폐해진 왕룽의 황혼에 내린 부드러운 봄비와 같았다.
소설의 마지막, 노인이 된 왕룽은 땅을 팔아치우려는 아들들을 향해 "땅을 팔면 끝장이다!"라고 울먹이며 외친다. 왕룽의 아들들에게 땅은 '팔 수 있는 숫자'에 불과했지만, 왕룽에게 땅은 '죽어서 돌아갈 품'이자 영혼의 뿌리였다. 50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 행간의 의미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다가온다.
오늘날 자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이 평범한 일상은, 부모님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온몸으로 지켜낸 ‘삶의 터전’ 덕분임을 가슴 깊이 새긴다. 『대지』는 결국, 나를 키워낸 부모님의 휘어진 등과 거친 손마디가 곧 나의 비옥한 땅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뒤늦은 감사문이었다.
부(富)는 구름처럼 몰려왔다 흩어지고, 가문은 계절처럼 성하고 쇠한다. 왕룽이 일구어낸 기름진 땅은 자들의 손에서 다시 모래알처럼 흩어지려 하지만, 펄벅은 왕룽의 마지막 숨결을 통해 경고한다. "땅에서 온 것은 결국 땅으로 돌아가며, 오직 대지만이 영원히 남는다"는 냉혹하고도 따뜻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