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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estories Dec 13. 2020

단추 같은 말

프랜차이즈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의 본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몇백 개의 매장을 통해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매장에서 사람 다루는 것에는 이력이 난 매장주들도 해결하지 못해 본사까지 닿는 고객과 관련된 문제들은 브랜드에 과실이 있다는 가정하에 보더라도 놀라운 경우가 많다. 이미 여러 번 입은 옷을 가져와 반품해달라고 하는 경우는 애교에 불과하다. 제품 리콜 문제를 안내했을 때, 몇 년 동안 샀던 모든 옷을 들고 와서 매장 바닥에 집어 던지며 환불과 보상을 요구하는 예도 있었고, 특판 진행 후 정산할 때 발생하는 마이너스는 CCTV를 돌려보면 번잡한 틈을 타 자연스럽게 가져온 바구니에 옷을 한 바가지 담아 유유히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류애가 상실되는 순간이랄까.


그래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개업 후 이런 고객들이 있는 경우 어떻게 할까, 온라인 기반으로 운영하려면 대면이 아니라 아마도 더 심한 클레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응대할까, 문제에 대한 클레임은 당연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면 되는데, 감정적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요구를 받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불특정 다수를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학습된 클레임의 공포가 밀려왔다. 구매 전 고객이 숙지할 수 있는 충분한 안내사항을 정리하고, Q&A에 대한 나름의 가이드도 정리하고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시뮬레이션도 하면서 두려움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오픈을 하고나서 몇 달이 지나자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클레임이 발생하는 때도 있었지만 예상했던 범위의 일이라 큰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놀랐던 것은 다정한 말의 힘과 그 힘을 은연중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온라인을 통해 주로 소통하는데,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 없이 다정하고 예의를 갖춘 사람들이 많다. 때로는 그간 지켜봤다며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응원을 더해주는 때도 있고, 판매자인 나보다도 더 정성스러운 후기를 작성해서 보내주는 일도 있다.


온라인의 다정함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온라인으로만 구매하다가 쇼룸을 방문하는 손님들도 간혹 있는데. 커피나 간식거리를 사 와서 건네주는 일도 있다.  그럴 때면 내가 뭐라꼬예, 강식당에서 눈물짓던 강호동이 된 기분이랄까. 송구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다.


쇼룸을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출장을 다녀왔을 때였다. 아직 정리 중이던 소품을 올려둔 채 한창 가게를 열고 있는데 한 여성분이 들어오셨다.

“이 소품은 얼마인가요?” “아, 저희가 그 제품은 아직 판매하는 상품이 아니에요.” 디스플레이용 소품을 문의하셔서 아쉽게도 구매가 어렵다는 안내를 드렸는데, 대신 유럽에서 바잉해 온 동전 지갑 하나와 딸에게 선물할 거라고 스커트 한 벌을 구매해가셨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한 가족이 쇼룸을 방문했는데 그때 다녀가신 분이셨다. 알고 보니 전주에 살고 계시는데, 온 가족이 서울여행 온 김에 시간 맞춰 방문하신 것이었다. 모아둔 소품으로 소품 가게를 오픈한 참이어서 지난 방문 때 구매하지 못한 소품도 구매하시고, 딸과 함께 맘에 드는 옷도 구매하시면서 담소를 나눴고, 다음 서울 방문을 기약하며 떠나셨다. 그 뒤로도 SNS를 통해 따님분은 간간이 옷을 구매한다. 우연히 들른 가게에, 시간을 내서 온 가족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다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코로나 19 이후로 오름세이던 매출이 줄었다. 시국이 이렇다 보니 소비를 축소하는 최우선 카테고리에 의류가 속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펜데믹 이전과 이후의 반응이 체감상 극명하게 달라져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 자주 구매하시고, 응원의 말도 보내주시는 고객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고민하던 옷을 주문했고, 새롭게 진행하는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이 함께였다. 그리고 더해진 말, “지금 다들 힘든 시기지만, 잘 될 거에요. 저도 힘을 보탭니다.” 긴 문장은 아니었지만, 행간에 담긴 응원과 마음이 오롯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좋은 날이 오면 같이 커피 한잔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무리한 그 날의 대화는 깊게 가슴에 남았다.


단추 같은 말이 있다. 마음을 잘 여며주고, 흐르지 않게 잘 닫아주는 말. 나는 그것을 이 일을 하며 배운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내가 하는 한 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날 몇 개 안 되는 피드백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그 날의 기분을 좌우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공손한 인사과 적당한 감사는 단추의 처음과 끝과 같이 필수적인 요소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막연히 두려워하던 익명의 타인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한다는 불안은 불특정 다수의 좋은 점을 볼 수 있고, 예전에는 전혀 만날 일 없던 사람들을 만나 연을 이을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단지 옷을 구매하는 공간임에도 애정을 가지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예상치 못한 응원과 위안을 받을 때도 있다. 내가 만든 공간이지만 사람들에게 내보였다면, 더 이상은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고객과 함께 만들어가고, 키워가는 공간이니 잘 유지하고 키워갈 책임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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