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8
비교적 신식의 공중전화 박스를 우연히 조우하게 되었다. 밤늦은 시간, 괜시리 걷고싶었던 느낌이 들어 평소 내리던 지하철 역에서 한정거장 이전에 내려 걸어가던 차에 발견하게 되었다.
최근에 본적이 없던 공중전화가 생소해서 그리고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통화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화기에 달린 카메라로 전화기를 찍는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전화화면에 발신자가 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걸었는지 받기도 전에 아는 것이다. 예전에는 전화를 받기전에 누구한테 받는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공손하게 받았었는데, 지금은 손가락 하나로 거절, 수신을 선택할수가 있게 되었다.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면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전같았으면 부재중전화가 와있는지도 몰랐기에 거실에 있다가도 전화기를 받기 위해 후다닥 뛰어왔었는데, 지금 어린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겠다.
전화통화가 무료가 이닌 시절에 알충전을 하거나, 데이터를 주고 받기도 했다. 연애를 하는 친구들은 통화가 많은 데이터요금제를 사용하기도하고, 데이터를 빌려주기도하면서 남자들의 의리를 지켜주기도 했다. 간혹 핸드폰 요금이 많이 나오는 친구들에게도 밥을 사주었던 대학생 시절이 글을 쓰면서 스쳐간다. 지금은 꽤나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거의 무료로 카카오톡이나 다른 메신저를 쓰기도하고, 전화통화도 대부분 무료에 가까운 무한요금제로 사용하기 떄문일테다.
전화란 이전에도 그림을 그렸었던 것 같은데, 그 시간을 오롯이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전화가 걸리고부터는 일분이 되었건, 십분이 되었건간에 그 둘 사이의 대화로만 채워지는 시공간이 된다. 그렇기에 전화를 받는 시간만큼은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통화하는 방식이 바뀌고, 연락하는 수단이 바뀌었어도 통화릃 하는 개인간. 그 사이의 시간의 중요도는 여전히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
생각난 김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에게도 안부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