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첫날이다. 아침 9시 30분까지 인천공항 터미널 여행사 카운터에 집결하라는 여행사 안내 문자를 받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집결’이라고는 했지만 같이 가는 사람이 모두 모이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 카운터에서 안내 책자를 받고 네팔에 가면 누가 기다리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 인천 공항에 앉아 있는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니, 공항 패션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시대에 등산화에 등산복 차림으로 공항에 앉아 있다니. 거기다 히말라야를 간답시고 매주 산을 탔더니 등산화는 흙투성이다. 하지만 어쩌랴. 앞으로는 세수도 잘 못하고 산다는데 지금 몰골이 오뜨꾸뛰르 런웨이 버금가는 최상의 복장일 수도 있다.
대충 아침을 공항에서 해결하고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략 6시간쯤 하는 비행시간 ‘추락의 해부’와 ‘인사이드아웃 2’를 보고 책을 읽다 보니 금방 지나버렸다.
카트만두에서 만난 네팔의 첫인상은 ‘기다림’이었다.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다.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에서 많이도 봐왔다. ‘빨리빨리’는 정말 우리나라 만한 데가 없다. 어디를 가든 조금은 느긋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팔도 똑같았다. 입국 수속까지 2시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은 익숙하지 못한 한국 사람 몇이 웅성거린다.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다, 왜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까지 볼멘소리가 들린다. 물론 나도 완전히 해탈한 수준으로 기분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만했다는 것이지. 10킬로가 넘는 배낭을 메고 땀을 흘리며 서 있는 것이 마냥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니니까.
그렇게 오랜 입국 수속이 끝나고 카트만두 공항으로 나왔다. 주홍빛과 형광빛이 섞인 카트만두의 밤은 어수선했다. 온갖 차들이 뒤엉켜 있고 빵빵! 하고 클락션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20년 전 인도 배낭여행이 생각났다. 그때는 이 보다 더 심했다. 이래서 경력자는 여유롭다. 겪어봐서 알기 때문이다. 날리는 먼지와 혼잡함이 익숙해서 웃음이 나왔다. 여전하다는 것이 웃기면서도 (아니,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하다니!)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든다.
첫날 여행은 별 의미가 없었다. 저녁 7시쯤 도착해서 식사를 하고 가지고 온 짐들을 포터들이 들 수 있도록 카고백에 담는 것이 일정의 다다. 인당 15kg의 무게로 제한이 있어서 눈대중으로 대충 짐을 싸두고, 나중에 카트만두로 돌아왔을 때 입을 옷만 남겨뒀다.
그리고 앞으로 더러워질 날들(?)을 위해 씻었다. 설마 이게 마지막 샤워가 되지는 않겠지.. 하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계속>
[히말라야 여행의 꿀팁]
여행사에서 챙기라고 하는 것은 일단 다 챙겨가는 것이 좋다. 설마설마했는데 모두 쓰고 왔다.
생각보다 덥다. 겨울옷은 딱 A.B.C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만 필요하다고 할 정도.
하지만 밤은 좀 춥다. 밤에 따뜻하게 보온할 옷들 정도는 잘 챙기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