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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Feb 26. 2018

[빌린:책] 『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을 처음으로 읽었다. 『투쟁 영역의 확장』은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블루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로 아름답게 재디자인되어 있으나, 나는 남편의 초판본을 빌려 읽었다. 우엘벡에 대한 단 하나의 정보 없이 그저 기대에 차서 읽은 이 소설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화자를 중심으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자본주의사회의 병폐, 계급화된 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를 연상시킨다. 우엘벡이 『투쟁 영역의 확장』을 쓰던 1994년 이후 세계는 그 속의 풍경 외피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씁쓸해진다.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어떤 파동도 없다. 삶을 향한 욕망도 없다. 그저 본능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고독과 소외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일지도 모른다.


『투쟁 영역의 확장』은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블루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로 아름답게 재디자인되어 있으나(아래 이미지), 나는 남편의 초판본(위 이미지)을 빌려 읽었다.

우엘벡은 『투쟁 영역의 확장』 이후  『소립자』를 통해 성에 대한 탐구를 다시 한번 이어간다고 한다. 예상 외로 『투쟁 영역의 확장』 에서도 성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분량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지, 섹스를 하기 위해 클럽에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자신보다 잘생긴 흑인과 클럽을 빠져나간 것 때문에 죽이고까지 싶어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기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이 소설이 아무리 1990년대 초반 소설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투쟁 영역의 확장』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아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블랙 코미디이며, 볕을 쬐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을 통해서는 제목과는 달리 전혀 확장되지도 못하고 확장될 수도 없는 투쟁 영역의 페이소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에는 정신분열적이고 과격하게 동적인 화자의 내면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한 손에 쥐고 읽기 편한 분량에, 단문들로 이루어진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이 소설을 통해 우엘벡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문명을 떨쳤다는 것에 대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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