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우엘벡을 처음으로 읽었다. 『투쟁 영역의 확장』은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블루 컬렉션’이라는 시리즈로 아름답게 재디자인되어 있으나, 나는 남편의 초판본을 빌려 읽었다. 우엘벡에 대한 단 하나의 정보 없이 그저 기대에 차서 읽은 이 소설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화자를 중심으로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 자본주의사회의 병폐, 계급화된 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영화 <her>의 주인공 테오도르를 연상시킨다. 우엘벡이 『투쟁 영역의 확장』을 쓰던 1994년 이후 세계는 그 속의 풍경 외피만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씁쓸해진다. 시간은 그저 흘러간다. 그 시간 속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어떤 파동도 없다. 삶을 향한 욕망도 없다. 그저 본능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고독과 소외는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할 뿐일지도 모른다.
우엘벡은 『투쟁 영역의 확장』 이후 『소립자』를 통해 성에 대한 탐구를 다시 한번 이어간다고 한다. 예상 외로 『투쟁 영역의 확장』 에서도 성 경제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가 분량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지, 섹스를 하기 위해 클럽에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가 자신보다 잘생긴 흑인과 클럽을 빠져나간 것 때문에 죽이고까지 싶어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따라가기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이 소설이 아무리 1990년대 초반 소설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투쟁 영역의 확장』은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아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블랙 코미디이며, 볕을 쬐며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을 통해서는 제목과는 달리 전혀 확장되지도 못하고 확장될 수도 없는 투쟁 영역의 페이소스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에는 정신분열적이고 과격하게 동적인 화자의 내면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한 손에 쥐고 읽기 편한 분량에, 단문들로 이루어진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이 소설을 통해 우엘벡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문명을 떨쳤다는 것에 대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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