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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육체 -돈 안 드는 걷기를 시작하며

몸이 아프니 만사가 다 귀찮았다. 무기력한 날이 이어지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예전부터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몸이 따라 움직여 줄 거라고 믿고 있던 나의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제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 몸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나는 그제야 몸이 중요하며 일상을 지속하는 것은 정신이 아니라 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하루하루를 지속하며 살아온 힘의 바탕은 정신이 아니라 몸 덕분이라는 것을.

아무리 정신을 다잡아도 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거나 정신의 중요성이 몸보다 앞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이 깨달음은 큰 충격을 주었다.



몸은 절대 하찮은 게 아니었다. 정신과 조화를 이루는 정도를 넘어 오히려 몸이 정신을 이끌고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몸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거듭거듭 느껴야 했다.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정신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위주가 되어서 일을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실체인 몸이었다. 몸이 있어야 그곳에 정신도 깃드는 것임을.



나는 몸을 돌보는 것이 나를 돌보는 첫걸음이란 걸 알았다. 늘 정신이 중요하고 몸은 정신에 따라가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몸’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하게 된 것이다.

정신과 몸의 조화, 균형도 중요하지만, 몸이 먼저라는 생각.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왜 예전에는 하지 못했을까?


몸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자 나는 ‘몸 돌보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중요한 것은 내 힘으로 걷고, 움직이고 그 과정을 지속하는 거다. 그래서 하루에 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걷기야말로 따로 돈이 들지 않는 운동의 최전선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문제는 내가 걷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것. 나는 걷기보다 차 타기를 좋아하고 가만히 안 자서 책 보고 뭔가를 끄적이는 삶을 선호하는 인간이었던 것.

그러나 이제는 몸을 위해 걸어야만 했다. 걷기 위해 발이 편한 운동화를 사고 야심 차게 밖으로 나갔지만, 첫날은 얼마 걷지 못했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밖에 좋아하지 않는 내가 하루 만 보를 계획한 것은 어불성설. 나는 겨우 4000보를 걷고 집으로 돌아왔다. 걷는 게 별로 재미가 없었던 탓이다. 다음날은 햇볕에 그을리지 않게 모자를 쓰고 트랙이 있는 공원으로 가서 걷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을 보며 트랙을 도니 지루함이 사라졌다. 유혹을 이겨내고 만 보를 걸었다. 내가 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고 하니 이전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은 큰 결심을 했다고 놀라워했다.

걷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달리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요즘같이 신록이 싱그런 계절에 달리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 하루키도 달리기를 한다. 그가 쓴 책을 읽으며 달리기에 대한 꿈을 키운다. 처음엔 5분 달리다 10분으로 15분 정도로 시간을 늘린다. 하지만 아직 달리기보다 걷기가 편하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걷되 조금씩 보폭에 변화를 주며 걷기로 한다.

푸른 풍경의 하나가 되어 걷는 내가 바로 실체다. 이 실체가 나를 만든다. 보이지 않는 정신이 아니라 내가 만지고 볼 수 있는 이 몸이야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최초의 것이 아닌가 말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면 삶이 건강해진다. 그 삶이 바로 현재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몸이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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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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