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보다 마음이 앞서는 자리, 은하수

리더로서의 고민과 성장

글 벗들과 함께 하는 ‘은하수’ 모임의 리더라는 자리가 내게 주어졌을 때, 솔직히 마음 한편에 무거운 짐이 느껴졌다. 원래 내성적인 나는 늘 조용히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모임을 이끌어야 한다니 두렵기도 하고,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34년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어른들과 모임을 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 느껴졌다.

하지만 매주 줌으로 만나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리더란 꼭 커다란 목소리로 분위기를 장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그 자리를 감싸 안아주고,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역할이 내게 더 잘 맞는다는 것도.



내가 내성적이기에 더 깊이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모임의 모든 글 벗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꺼낼 수 있었다. 모임이 49회차를 넘기며 서로의 부족함도, 성장도 함께 지켜보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점점 더 마음 깊이 느꼈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도 함께 자라나는 걸 느꼈다. 내성적인 나조차도 이렇게 누군가를 이끌고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사했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엔 9명으로 시작했으나 두 분이 개인 사정으로 빠지고 일곱 명이 꾸준히 함께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에 모이기에 그 주 월요일 자정까지는 원고를 카톡에 올리는 걸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글이 그리 뚝딱 써지는 것이던가.

그럼에도 회원들은 마감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보통 2~3편의 글이 올라오고 월요일에 올라온 글은 화, 수, 목요일까지 회원들이 돌아가며 읽는다. 얼마나 꼼꼼하고 예리하게 읽어주시는지 합평을 들으며 많이 배우게 된다.

일반적으로 합평이라 하면 글을 하나하나 해부하고 난도질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20대 초반에 합평을 경험해 본 나는, 그런 방식의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글을 쓴 에너지 자체가 사라지고 자괴감만 남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하수 이전에 우리가 만났던 글쓰기 합평 모임은 달랐다.

상대의 글이 가진 장점과 아쉬운 점을 온몸으로 읽고 격려해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이런 다정함이라면 글을 쓸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회원들의 역량이 좋았다. 기본적으로 은하수 회원들은 글을 잘 쓰신다. 각자의 시각이 뚜렷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과 그걸 글로 풀어내는 방식이 다양하다. 같은 직업을 가진 분이지만 직장에 대한 글이 다르고 저마다의 감성과 개성으로 각자의 세상을 일구어낸다. 어찌 이리 정말 역량이 탁월하신 분들이 고루 모이게 된 것일까? 모여서 글을 읽어주고 평을 나눌 때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일주일에 2시간, 줌으로 하는 합평이지만 급한 일이 아니면 빠지지 않고 그 주에 제출한 글을 돌아가며 합평한다. 어찌나 섬세하게 터치하는지 2시간은 항상 시간을 넘겨 끝나기 마련이다. 늦은 밤, 생업에 종사하다 모여 힘들 수도 있는데 전혀 내색하지 않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글쓰기에 대한 열망과 애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철학적이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회원,

자기만의 세계와 문체가 뚜렷한 분,

글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본연의 다정함이 배어 나오는 분,

방황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새로운 교육의 장을 여는 분,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의 열정이 글에서 뚝뚝 흘러넘치는 분,

사물의 본질을 보고 그것을 글로 자기화하는 분,

같이하는 회원들의 모습에서 나는 오늘도 넘치게 배운다.

은퇴 후에 이런 좋은 모임을 하게 된 것이 내게는 분에 넘치는 행복으로 느껴진다. 그들과 함께하며 같이 읽는 글들은 세상을 촘촘히 밝히고 더 아름답게 가꿔갈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이토록 매주 모여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문장을 다듬는 이유가 단순히 ‘잘 쓰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 글이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감싸 안는 또 다른 외투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에 고골이 있다. 권력자의 위선과 사회의 부조리, 하층민에 대한 연민을 작품에 담아낸 그의 시선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특히 나는 <외투>와 <코>를 좋아한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는 단지 방한용 옷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의 최소한을 보호해주는 마지막 껍질이었다. 그가 외투를 잃고 나서조차 사람 취급받지 못하는 장면에서 나는 뼈아픈 현실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외투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세상의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마음에게, 다정하게 덮어줄 수 있는 그런 문장을 건네고 싶다.


‘은하수’는 단순한 글쓰기 모임을 넘어, 서로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비추는 따뜻한 별자리 같다.

앞으로도 나는 이 은하수 아래에서 글과 사람, 그리고 나 자신과 깊은 만남을 이어가고 누군가에게 외투와 같은 존재로 남고 싶다.말보다 마음이 앞서는 자리에서, 우리는 글로 서로를 감싸 안고, 고요하게 자라나고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외투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 자리에서 글을 쓴다.

그 따뜻한 별빛이, 오늘도 우리 삶의 어느 구석을 환히 밝혀주기를.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글벗들, 그리고 은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