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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솔로숀 Oct 07. 2019

돌잔치에 가면

난임의 마음 (8)

돌잔치 장소에 들어서니 눈이 닿는 곳마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들이 보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떻게 산다 소식만 들었던 학교 때 친구들이 자신 혹은 남편을 닮은 아이를 안고 들어온다. 입덧을 오래 해서, 아기가 예민해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홀쭉해진 얼굴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품 안에 아이 한 명이 열심히 살았고, 결혼했고, 열 달 귀하게 생명을 품었다는 그녀의 알리바이 같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이렇게 동시에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었다.


오늘 모두가 귀여운 방울이 달린 소품을 가져오기로 말을 맞췄는데 나만 못 챙긴 것 같다. 혼자 드레스 코드 못 맞췄구나 싶어서 너무 튀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방을 걸고, 의자에 재킷을 걸쳐두고 앉으려는데 오늘 잔치의 주인공인 손자를 트로피처럼 안고 있는 친구의 부모님이 보인다. 내심 피하고 싶었는데 눈이 마주쳤다. 뜨끔했지만 걸음은 이미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아빠랑 길을 가다가 동네 친구와 마주친 적이 있다. 친구는 이제 제법 걷기도 하는 아이와 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그 맘때 뒤뚱뒤뚱 걷는 아이는 얼마나 귀여운가.


내가 알기로 우리 아빠는 아기를 정말 예뻐한다. 그런데 친구 아이를 다정하게 잠시 바라보며 ‘아유 예쁘구나’ 할 뿐 더 다가서지 않았다. 나와 친구가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 걸음 뒤에서 우리의 얘기를 듣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걷는다. 아마도 그건 나에 대한 의리였던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내가 아이를 낳으면 물고 빨고 제일 예뻐할 사람은 우리 아빠다.


다시 돌잔치, 어른들을 만나면 으레 듣는 이야기를 좀 듣고, ‘좋으시겠어요~’라고 넉살을 부릴 타이밍인가 잠시 고민하는데 다행히도 뒤따라온 친구의 배가 제법 불렀다. 어머니의 시선을 빼앗아줘서 고마워 친구!


돌잡이, 생일 기념 영상 등 준비된 순서가 후다닥 지나간다. 아이들은 그립감이 좋아서인지 마이크를 주로 잡는 것 같다. 육아가 전쟁같아서 울었다는 친구는 생일 기념 영상 속에서 보는 내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식사 중반에 들어서자 사회자가 무대로 나오더니 잔칫상 옆에 그럴듯하게 올려져 있는 선물 박스를 가리킨다. 친구 부부가 준비한 추가 답례품 이벤트다.


원래 럭키박스운 같은 건 별로 없지만 여기는 모집단이 작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름 흥미를 가져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선물 이벤트, 사회자가 말했다.


- 여기서 우리 아이가 제일 어리다. 손 들어주세요!


저마다의 테이블에서 앉아있는 아이들의 나이를 대충 가늠하는가 싶더니 곧 내 아이의 개월 수를 외치기 시작했다.


- 12개월!

- 10개월!!


김이 샌 나는 다시 뷔페로 돌아가 디저트 거리라도 퍼올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테이블에서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 여기 20주요!

- 아, 태아까지 포함해도 됩니다!

사회자가 신이 났다.

- 여기 8주요!!


앞에 앉은 친구가 너네는 더 어린 거 아니냐며 농담을 했지만, 뭐라는 거냐고 받아쳤다. 역시 음식을 더 퍼올걸 그랬어.


선물은 임신 8주 차인 그 친구에게 돌아갔다. 선물을 받으러 나가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그 날 ‘돌잔치 장소에서 가장 멀리 사는 친구’로 바디샤워 세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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