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마음 (9)
3년에 한 번 꼴로 생리통이 된통 찾아오는 달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이후로 다섯 번 정도 그런 생리통을 겪었고, 그중에 세 번은 응급실행이었다.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니 집에서는 맹장이 터졌을 거라고 했고, 학교에서는 구토를 동반했으니 급체인 것 같다고 했다. 구급차가 올 때까지 교무실에서 침 잘 놓기로 소문난 일본어 선생님이 열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딴 적도 있었다.
발작적인 통증에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하면 이것저것 검사하는 사이에 진통이 가라앉아 아무렇지 않게 걸어서 집에 왔다. 그냥 생리통이었다.
그래서 생리 예정일 아침에는 일찍 식사를 하고 미리 진통제를 먹어둔다. 그날도 진통제를 털어 넣고 다시 자리에 눕는데 갑자기 구토가 나더니 순식간에 아랫배 전체에 심한 수축이 이어졌다. 악 소리도 못 내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맞다. 나 자궁내막증 있댔지.
기운이 다 빠진 채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자궁내막증, 생리통을 검색하는데 드문드문 비슷한 키워드의 커뮤니티 글이 보였다.
’ 자궁내막증’에 ‘난저’인데 임신하신 분 있나요?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난소 기능 저하로 난임 진단을 받았고, 내막증 치료를 먼저 해야 할지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질문이 대부분이다. 병원에 따라 다르지만, 내막증 수술 과정에서 난소 기능이 더욱 저하될 수 있어 가능한 시험관 시술을 먼저 할 것을 추천하는 분위기다.
다시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니던 난임 병원 선생님이 자궁내막증 전문이라 예약 상담을 했는데 현재는 다른 지점으로 가셨단다. 일단은 시술 목적이 아니니 가까운 지점으로 예약하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실에는 차분하고 온화한 표정의 담당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과하게 밝지도, 어둡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중간의 분위기와 편안한 톤의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다.
- 난소 수치는 6개월 전과 같아요. 그런데 이전 검사에서 오른쪽에만 있던 자궁내막증이 현재는 양쪽에 있는 걸로 확인이 됐어요.
- 네, 얼마 전에 생리통이 엄청 심했어요. 구토를 하기도 했고요. 컨디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 네, 심한 분들은 그렇게 나타나기도 해요.
- 사실, 남편 건강 문제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술을 미루려고 했어요. 적어도 내년 상반기는 지나서요. 그런데 이런 생리통을 겪고 나니 그렇게 보낼 시간이 있는 걸까 싶기도 하네요.
-아.. 임신을 위한 몸을 좀 만들고 싶으신 거라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분들은 적당한 운동과 휴식, 식이요법 등으로 정자 상태를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어요. 말하자면 유턴이 가능한 거예요.
- 아, 그런가요?
그런데, 난소 건강은 일방통행이에요
-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그래서 시술 하실때 임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를 물어보시면, 저는 한 달이라도 빨리 시도를 하시는 게 좋다는 의견을 드려요. 진료 기록에는 이전 인공 수정 시술 중단 원인이 적혀있네요.. 남편분 건강이 괜찮으시다면 다시 한번 상의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마음 편히 잘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궁내막증은 말 그대로 증식했고, 위치상 언제 커져서 난포의 성장과 배란을 막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알 수 없는 불안’이 다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방에서 쉬고 있는 남편 옆에 가만히 앉아있다 말을 걸었다.
- 여보, 우리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아?
남편은 오늘 뭐 실수한 게 있나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심스럽게 당분간 아이 갖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기로 했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도 임신이 다시 우리의 우선 과제가 되는 것은 싫었다. 그 마음 고생 뭔지 아니까. 그런데 ‘난소 건강이 일방통행’ 이라면 우리한테는 앞으로 시간이 별로 없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어쩌면 내 생각은 처음으로 리셋되버린 것 같다. 그런 대답을 했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