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마음 (11)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장소는 곧 출산을 앞둔 만삭 친구의 집. 인원은 나까지 네 명이었는데 둘은 각 임신 중이거나 육아 중이고, 나와 나머지 한 명은 남편과 둘이 산다.
친구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의 대화 내용은 ‘주사를 언제 맞아야 무통 천국을 누리는지’, ‘매 달 짧아지는 경부 길이의 압박감이란 무엇인지’, ‘조산기로 고생했던 지인의 아기는 얼마나 잘 크는지’ 기타 등등이었다.
이미 육아 중인 친구는 경험상 공감과 조언을 많이
했고, 아이가 없는 나와 친구도 ‘예비 엄마’ 입장에서 들어두면 유용할 이야기라고 생각해 열심히 듣고 묻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 대화는 함께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면서 나누었던 때의 대화와는 결이 좀 달랐다. 뭐랄까 나 빼고 다 원어민인 느낌? 대충 알아는 듣겠는데 별로 할 말이 없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거실 테이블에서 맥주잔을 들고 소파 끄트머리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에서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나는 빙산에서 녹아 떨어진 유빙같이 부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만에 대화의 주제가 바뀌면서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라고 말을 꺼내려는데, 소파에 길게 누우며 자세를 바꾸던 친구가 소리쳤다.
- 오, 지금 아기가 발로 찼어!!
우리는 다시 시험관 시술을 결정했다.
임신 걱정 없이, 시술 없이 1년 우리만 생각하며 살자는 계획을 6개월 만에 접었다. 남편과 며칠 상의한 끝에 내린 결론은 시험관 시술을 ‘딱 한 번’만 해보자는 것이었다.
딱 한 번의 이유는 이렇다. 1년을 목표로 쉬고 있는 우리에겐 예정에 없던 지출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이제 막 이직의 방향을 잡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처음엔 난색 했다. 내 생각에는 일단 한 달 생활비를 시술 비용으로 쓰고 새 일을 일찍 알아보면 되는 것.이었는데 남편은 이후의 책임까지 계산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입장이었다.
- 한 달 생활비로 시험관을 한다고 해도 정말 임신이 되면? 임신 초기의 당신이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새 직장을 구할 때쯤 아기가 태어나면? 당장 아기는 무슨 돈으로 키우지?
맞는 얘기였지만 나는 굽히지 않았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황당할 정도로 아기가 생기면 고마운 거지!라고만 말했다.
-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도 되고, 아니면 집을 좀 줄여가는 방법도 있어. 그리고 아이는 다 자기 숟가락 물고 나온댔어. 돈은 벌면 되고.
우선하는 목표가 생기면 나머지 옵션은 모두 목표에 맞게 세팅하는 게 나의 타입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게 있다. 모든 조건을 맞출 때까지 내 난소 기능이 남아 있어 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난임에 대한 내 고민이 콤플렉스로 기울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남편은 이 얘길 듣고 시술에 동의했던 것 같다.
퇴사 후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부부가 SNS에서 화제였다. 나는 그들 부부 중 아내이자 프로젝트 대표인 ‘그녀’를 팔로우하고 있다. 내 또래였고, 생각의 방향이 비슷했다. 그녀의 일상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았고 내가 ‘좋아요’를 누를수록 그녀의 포스팅은 자주 내 피드 상단에 업데이트됐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결혼 몇 년 차이고, 아이를 예뻐하지만 시작한 사업에 대한 책임과 욕심이 있어서 당장은 2세 계획이 없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 소신(?)을 듣고 나니 그녀의 포스팅을 읽는 게 한결 편했다. ’그래 임신은 좀 미루고 뭔가 해낼만한 일을 찾을 수도 있겠다’ 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올리는 아기 사진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프로젝트가 더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산전검사 결과를 듣고 시험관 시술을 고민하던 즈음이었다. 그녀에게 아기가 생겼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고 조심스러웠다. 임신 초기 입덧을 견디며 일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놀란 건 그녀가 올린 임신 소식이 아니라 방어할 새도 없이 느껴버린 나의 반응이다.
심장이 위에서 아래로 10cm쯤 쿵 하고 떨어졌다.
일상을 잘 살다가 벌거벗은 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린 것 같은 느낌.
‘뭐지 이 찌질함은, 응원하는 사람이었는데 당연히 축하하는 마음이 들어야 하잖아?’ 웃겼다. 배신감 같은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댓글창을 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여 일하고 있는 많은 워킹맘들의 공감과 축하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됐다. 내가 요즘 소름 끼치도록 자주 느끼고 있는 기분의 실체를, 소외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