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솔로숀 Oct 17. 2019

배란 주사를 잘 맞는 비결

난임의 마음 (10)

 출근 시간 지하철을 탔다. 8개월 전처럼.


그때도 난임 시술 동의서를 가지고 첫 배란 주사를 맞으러 갔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 날은 회사에 오전 반차를 냈고, 병원에 가서 스스로 배에 주사 놓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집에 가서 맞을 주사기를 아이스팩에 담아 들고 ‘아, 참 고달프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 위해 진료 예약을 해둔 건 일주일 전이었다. 생리 예정일만큼은 틀린 적이 없었는데 막상 병원 가는 날이 되자 소식이 없다. 병원에 매일 예약과 취소를 다시 해가며 생리를 기다렸다. 혹시 지난달 생리가 마지막이었던 건 아닌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그렇게 당연한 일들이 내 삶에서 쉽게 작동하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오랜만에 본 담당 선생님의 얼굴이

반가웠다. 아마 그분이 오늘 본 환자 중에 내 표정이 제일 밝지 않았을까. 우선 시술 동의서를 내고 주사 처방을 받으며 과배란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난소 과자극 증후군’ 이란 게 있어요. 과배란 유도 시 난포가 과도하게 성장하고, 복수가 차거나 혈전이 생기는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요. 그런데 우연 씨는 난소 수치가 낮은 편이라 염려되는 부분은 아니에요. 오히려 유의미한 수의 난포를 확보하기 위해 호르몬 주사는 고용량으로 맞을 거예요. 중간 점검 때  반응도 체크할 거니까 이 부분도 걱정은 말고요.

- 네, 알겠습니다.

- 드디어 시작이네요. 주사가 고용량이라 좀 힘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올해 우리 꼭 예쁜 아기 만나자고요! 처방해드린 대로 주사만 잘 맞고 오시면 됩니다. 중간 점검일에 봅시다. :)


더한 말도 덜한 말도 안 하시는 분이다. 선생님의 심플한 응원에 힘이 났다.




배란 주사 시작

왼손으로 배꼽 주변 뱃살을 움켜쥐고 주사기를 잡은 오른손으로 주삿바늘을 90도로 꽂아 약물을 천천히 밀어 넣는다. 바늘을 빼고 알코올 솜으로 꾹 눌러 지혈한다.


살면서 내 몸에 스스로 주삿바늘을 꽂을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시험관 시술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한 번도 없을 수도 있는 일. 기본적으로 그 자세가 좀 서글프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해야 하는 일이다. 그냥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하는 것처럼 순서대로, 루틴대로.


여담이지만 주삿바늘이 얇아서 따끔하지도 않다. 처방에 따라 돌 주사도 있고, 하루에 주사 두대, 세대를 맞아야 하는 날도 있지만. 그 쯤되면 주사기랑 알코올 솜 좌악 펼쳐놓고 순식간에 끝낼 수 있게 된다. 이건 그냥 내가 재능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배란 주사 잘 맞는 법

생각해보면, 감정적으로 부풀어 오르는 지점을 찾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굳이 서러운 지점을 찾아 억울해하지 않은 것. 그게 배란 주사를 잘 맞는 내 비결이었다.


오히려 힘들었던 건 며칠 지나자 올라오는 구역질이었다. 입덧도 아니고. 먹고 싶은, 아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떠오른다. 그중에 엄마의 시래기 된장국이 가장 맛있었다. 엄마는 너 임신했을 때 이것만 먹었다며 웃었다. 신기하다. 친정 살 땐 잘 먹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중간 점검에서 의외로 난포가 잘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만 하면 유의미한 수의 난포를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어쩐지 배가 빵빵하다. 몇 달 알 안 낳고 버틴 닭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아니 그냥 새라고 하자.


비가 자주 오는 동네에 살면서 ‘내일 비가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면 그 삶은 너무 어려워지니까.
이전 09화 난소 건강은 일방통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