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의 마음 (12)
생을 만나는 곳, 출산 병원
제일 친한 친구가 출산을 했다. 아기도 보고, 고생한 친구에게 인사도 전할 겸 산부인과를 찾았다. 난임 병원만 가봤지, 실제 출산을 하는 병원에 가본 건 처음이었다.
1층 카페테리아에는 신생아를 보러 온 가족들과 어른 손바닥만큼 작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은 아빠들이 앉아있었다.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와 절뚝거리며 걷는 산모들도 내내 밝은 표정인건 조금 놀라웠다.
친구와 신생아실 복도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를 봤다. 하품 한 번을 안 하고 곤히 자는 아기를 20분 동안 보고 있는데 내내 신기하고 예뻤다. 입원실에서 잠시 내려온 친구 남편에게 축하인사를 전했다. 정신없고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내내 옅은 미소가 가득했다.
생을 기다리는 곳, 난임 병원
난자 채취 날, 대기 장소에는 정자 채취를 마치고 아내를 시술실에 들여보낸 남편들이 띄엄띄엄 앉아있다. 좁은 공간에 나름 빼곡히 앉아있지만, 고개를 든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묘하게 허공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볼뿐이다. 방금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는지 공기가 메캐하다.
데스크에서 나를 호명하면 신분증을 보여주고 신원을 확인한다. 그럼 종이 팔찌를 하나 주는데 거기 있는 바코드를 차고 손등을 기계에 찍어서 재차 나임을 확인해야 시술실 입장이 가능하다.
바로 시술장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사물함에 스마트폰을 넣었는데 은근 대기시간이 있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이제 답안지를 제출하기 전에는 퇴실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들을 때처럼 배가 알싸하게 아파왔다.
어릴 때 할머니가 자장가로 불러주시던 찬송가가 떠올랐다. 다행히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30분쯤 지나서 시술장으로 입장했다. 진료실과는 다르게 의외로 서늘한 수술장의 느낌이 있었다.
천장을 보고 있는 내 얼굴 앞으로 위생 마스크를 쓰고 있는 담당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 우연 씨, 열심히 난포 키우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 제가 할 일만 남았어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기분 어때요? 떨려요?
- 네, 조금..
- 아픈 건 마취 이후에 할 거예요. 조금만 자고 일어나요. 우리는 시술 끝나면 다시 만나요.
나의 일인데, 이제 내가 맡아서 잘해보겠다고 하는 누군가의 말이 이렇게 힘이 되는 줄 전에는 몰랐다.
꿈같은 대화가 끝이 나고 정신을 차렸을 땐 다시 시술을 기다리던 침대 위였다. 생리통 같은 불편한 통증이 있었지만 곧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놔줬다.
엄청 아프다는 블로그 후기 때문에 무서웠는데 예상한 정도로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맞은 편 베드에서는 내내 앓는 소리가 나는 걸로 봐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나보다.
고된 난임 시술 과정에서 ‘난자 채취’라는 예선전을 마쳤다. 커튼으로 대충 구분된 공간에서 홀로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통증 때문에, 긴장이 풀린 탓에, 또는 그간에 서러움에 여기저기서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모두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도했다.
함께 기다리는 사람
시술실을 나와 남편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과배란 때문에 여전히 어기적어기적 걷는 나를 위해 약봉지밖에 들지 않은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저 가방에 ‘임산부 먼저’라는 핑크 배지가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민하게 굴지 않고 너무 서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늘 담담한 태도로 위로가 되었다. 예를들면 오늘은 우연이가 기운이 없으니 (나는 싫어하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물에 빠진 소고기를 먹어야겠다며 스키야키 맛집을 검색했다. 이런 옆사람과 함께 새로운 생명을 만나러 가는 길을 함께 걷다니 다행이다.
* 난자 채취 다음날 Bible 앱에 ‘로마서 8장 27절’이 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낮은 난소 수치때문에 고민했지만, 필요한 수만큼의 건강한 난자를 채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