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솔로숀 Oct 25. 2019

증상 놀이의 끝판왕

난임의 마음 (14)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장에 들어가 문제 풀고 답안지를 냈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집에 가서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간의 노력이 스스로 대견하여 평온한 마음으로

좋은 결과를 기다리면 좋겠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고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때 우리는 ‘마음고생’이라는 것을 사서 하게 된다.


가령, 작년 커트라인은 몇 점이었는지? 예비 번호는 몇 번까지 빠졌는지? 헷갈리는 이 한 문제는 중복으로 정답 처리가 될지 안 될지 등을 검색하면서.




의사의 처방을 받아 꼬박꼬박 배란 주사를 맞고, 잘 키운 난포를 채취하는 것까지 마무리하면 남은 것은 ‘배아 이식’이다. 채취한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 배양하고 엄마의 자궁 속에 이식하는 것인데 난자 채취 후 3일에서 5일 후 진행한다. 나는 3일 동안 배양한 신선 배아 두 개를 이식했다.


대기 시간과 이식 후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배아 이식에만 걸리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 정도지만, 실제로 잘 지나가야 하는 과정은 배아 이식 후 10여 일에 있다. 그 후에는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증상 놀이의 시작


3일 배양 후 3일째/ 5일째 / 7일째 증상


포털에 ‘3일 배양’만 쳐도 ‘증상’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검색어가 자동 완성된다.

3일 배양 후 4일째, 배가 싸르르한데, 임신하신 분들 어땠나요?
3일 배양 후 5일째, 더위 안 타는데 엄청 덥네요 이번엔 성공일까요?
3일 배양 후 7일째, 가슴 통증 있어요. 임테기 해볼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3일 배양 후 8일째, 임테기에 손을 대 버렸네요. 매직아이 판별 부탁드려요. 임신일까요?


배아 이식 후 나타나는 몇 개의 증상을 학습하고 나니 나는 목 근처가 뜨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기초체온법’이라고 임신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증상인데 숫자로 소수점까지 챙겨보는 건 또 무서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목을 짚어보며 여전히 뜨뜻한지 확인했다.


두 번째 증상은 난소가 다시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과배란을 하면서 자극된 난소는 걷기 불편할 정도로 부어있었다. 난자 채취를 하고 나서는 좀 가라앉는 것 같더니 저번보다 아랫배가 더 나오고 다시 걸음이 불편해졌다. 블로그 후기를 검색해보니 나쁘지 않은 신호라고 했다.


세 번째 증상은 밤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몇 번 핑 돌아서 넘어질 뻔한 것. 평소 같으면 다음날 병원에 가볼 일인데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이쯤 되면 임신이 하고 싶은 건지, 임신 증상을 다 느껴보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둘 다 이겠지만.


증상 놀이의 결말

그렇게 며칠 몸에 열이 오르고 기운도 없어하니 남편은 걱정스러워 했지만 나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해서 미리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고 있던 중이었다. (그걸 누군가 시험관 생색이라고 하더라) 자신감이 생겨서 인터넷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3세트 구입했다.


피검사를 3일 앞둔 날 아침, 메신저 단체 창 알람에 정신이 들었다. 지난밤 밤잠을 설친 초보 엄마의 신생아 수유 양에 대한 고민 상담이었다. 잠텀, 먹텀, 통잠.. 사실 아직은 읽어도 잘 모르겠는 내용들을 스윽 훑어보면서 습관적으로 손을 목에 가져다 댔다.

‘응 나도 이제 이런 거 알아두면 좋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뜨끈했던 목 주변이 오늘은 이상하게 찬 것 같다.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불편했던 아랫배도 편안하다. 어떻게 된 거지?


‘결국은 착상에 실패한 건가?’, ‘헐, 어제 테스트기라도 해봤음 두 줄 뜨는 거라도 한번 볼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마음이 요동쳤다.


한 달 동안 지그시 눌러왔던 설움이 한꺼번에 넘쳐 오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한 달을 버텼는지 스스로 자각한 시간이었다. 다시 침대에 누우려다가 침대 모서리에 팔꿈치를 기대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세는 그랬는데 사실 기도보다는 그냥 울음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일어섰더니 다시 몸에서 열이 오르고 제대로 몸살 기운이 돈다. 이건 그냥 진짜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냥 이렇게만 놔둬주세요.라고 혼잣말을 하곤 다시 잠에 들었다.

이전 13화 난임과 터널의 공통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