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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설명력 01화

설명하기의 힘을 깨닫다

고등학교 수학공부로 깨달은 설명하기의 힘

by 하크니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이성 관계에만 관심이 있어 줄곧 이성만 따라다녔다. 적극적이지도 않고 그냥 혼자 짝사랑한 정도다. 그러다 문득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3 겨울방학 때부터 어떻게 공부하는지 몰라서, ‘수학의 정석 - 공통수학’을 사들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집합부터 공부를 했는데 그 단원 마지막에 있는 심화문제를 풀기 어려웠다. 나름 열심히 공부는 했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를 하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 전교 6등을 했다. 다니던 학원 선생님은 이 정도면 S대학은 아니더라도 Y, K대학은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난 자만했다. 생각보다 공부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의고사를 볼 기회가 있었다. 모의고사를 봤는데 수학은 정말 앞에 2점짜리와 3점짜리 문제 초반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풀 수가 없었다. 생판 처음 보는 문제라서 어떤 공식을 적용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수준이었다. 난감했다. 내신은 전교 10위권 안팎인데, 같은 전교 10위권 안팎인 애들은 모의고사 점수도 나보다 30점 이상 높았다. 유독 모의고사 점수가 안 나왔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한 진단은 ‘내가 처음 보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에 풀지 못한다’였다. 가능한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자 역대 모의고사 및 수능 문제가 모여있는 문제집을 사서 무작정 풀었다. 안 풀리면 해답을 보고 왜 그렇게 풀었는지 이해해 보려고 애쓰며 넘어갔다. 그래도 처음 보는 문제들은 풀기 힘들었다. 결국 수능을 보고, 그냥 점수에 맞는 대학을 갔다. 그래도 수학 공부 자체는 재밌다고 생각해서 수학통계학부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인 수학 과외를 나도 하게 되었다. 수학 과외를 준비하면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적용했던 공식들을 아이들에게 ‘설명’ 해야 했다. 우리가 정말 많이 알고 있는 공식인 ‘근의 공식’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근의 공식은

근의 공식 1.JPG

이라는 2차 방정식의 근(해)를 구하는 공식이다.


근의 공식 2.JPG

a, b, c를 이 공식에 대입만 하면 근을 구할 수 있는 초고속 방법이다. 이것이 바로 근의 공식이고 아주 유명한 공식이다(수포자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내 공부방법은 이랬다.


1. 근의 공식이 무엇인지 머리로 이해한다.

‘근의 공식은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데 사용하는구나. 2차 항 앞의 계수를 a, 1차 항 앞의 계수를 b, 상수항을 c라고 했을 때, 공식은

근의 공식 2.JPG

이고, a, b, c를 대입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이해한다.


2. 근의 공식을 달달 외운다.

‘엑스는 이에이 분에 마이너스비 플러스마이너스 루트 비제곱 마이너스 사에이 씨!!’ 입으로 달달, 머릿속으로 달달 외웠다.


3. 연습 문제를 푼다.

실제 문제를 풀면서 대입해서 답을 구해본다. 풀다 보면 공식이 더 쉽게 외워진다.


4. 실전에 적용한다.

시험 문제에 근의 공식을 사용하는 문제가 나오면 가볍게 적용해서 답을 맞힌다.

시험에서 노골적으로 근의 공식을 이용해서 답을 구하는 문제는 2점짜리 문제 정도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모의고사나 수능에서 물어보는 문제들은 ‘응용’을 해야 되는 문제다. 그런 문제들은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대비해야 풀 수 있을까? 그것은 ‘근의 공식’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한다.

인터넷에 근의 공식 유도라고 치면 공식유도 방법이 나온다. 유도를 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다.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수분해로 푸는 방법이 있다. 인수분해가 되면 이차방정식의 근을 금방 알아낼 수 있다. 두 번째는 완전제곱식을 이용해 해를 구하는 방법이다. 이를 공식화한 것이 근의 공식이다. 아주 간단하게 살펴볼 텐데(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런 과정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사진으로 정리된 걸 넣겠다.


근의 공식 유도.JPG

여기까지가 끝이다. 이게 수학공부의 핵심이다.

근의 공식이 어떨 때 사용하는 것인지, 개념은 완전제곱식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 이 풀이과정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아이디어.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문제가 모의고사에 나온다. 나는 학생인 당시에도 이런 공부방법을 몰랐다. 무작정 공식을 외우고 대입하고 푸는, 흔히 말하는 주입식 교육으로 공부를 했다. 수학을 외워 푸는 방법으로 공부했다. 외워서는 수능의 킬러문제인 21번, 30번 문제는 풀 수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풀 수 없다.

그런데,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하면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지능 수준으로도 21번, 30번 문제를 풀 수 있다. 재능의 영역이 아니다. 이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수학을 재능의 영역, 천재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또는 엄청난 고액 과외 같은 걸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교육비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과외시절로 넘어가 보자. 내가 공부를 하는 게 아니고 가르치기 위해, 즉 학생에게 설명하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 처음 보는 수학문제들도 신기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문제들을 풀다 보면 공식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고민과 과정들을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잘 풀어내지 못했다. 여기서 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설명하는 연습, 그것이 진짜 공부다’


학생에게 가르칠 이론을 공부하고, 설명하기 위해 연습하면서 나는 저절로 그 공식에 관한 개념에 통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수학공부가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근의 공식을 예로 마무리하자.


1. 근의 공식이 무엇인지 머리로 이해한다.

‘근의 공식은 2차 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데 사용하는구나. 2차 항 앞의 계수를 a, 1차 항 앞의 계수를 b, 상수항을 c라고 했을 때, 공식은

근의 공식 2.JPG

이고, a, b, c를 대입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이해한다.


2. 근의 공식이 유도되는 과정을 이해한다.

'근의 공식은 왜 저렇게 생겨났을까? 아, 인수분해가 되지 않는 2차 방정식을 완전제곱식 형태로 바꾸어 풀다 보니, 저렇게 생긴 거구나!'라고 이해한다.


3. 근의 공식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상상을 하며 설명한다.

위의 근의 공식 유도 방식을 하나씩 계산하며 앞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4. 연습 문제를 푼다.

공식을 설명할 수도 있어야 하지만 시간관계상 공식을 바로 대입해서 풀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습 문제를 통해 공식을 습득한다.


5. 실전에 적용한다.

시험 문제에 근의 공식을 사용하는 문제 또는 그 유도과정을 응용하는 문제가 나와도 풀 수 있다.


이게 진짜 수학공부다. 이런 올바른 방법으로 약 1~3년 정도 꾸준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찾아낸 핵심 교훈은 바로 ‘설명의 힘’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걸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연습이 최강의 공부방법이며, 끝판왕이다. 이는 수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직장에서 일을 할 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주식투자를 할 때, 경제 상황을 이해할 때, 운동을 가르칠 때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설명을 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런 연습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과목이 수학이라서 우리가 수학을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물리학도 마찬가지다. 아주 좋은 도구다. 이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수학공부가 왜 필요하냐? 덧셈 뺄셈만 할 줄 알면 되지!’라고 말한다.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공부가 왜 필요한지, 더 나아가 남에게 내가 알고 있는 걸 설명하는 연습이 왜 필요한지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내 깨달음. 즉, 설명하기의 힘에 대해 지금부터 나눠보고자 한다. 내 경험과 설명하는 연습, 설명하기의 힘, 좋아진 점들을 지금부터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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