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은 나의 철학을 물어보는 것 같다
인천공항 지상조업, 택배, 쿠팡맨, 버스기사 모두 아닌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번엔 우리 동네에 있는 K대학교의 정부지원사업단 소속 직원 이력서를 급하게 썼다.
사람인으로 찾아서 지원을 했다. 이력서 쓸 시간이 없어서 마감날 회사에서 휘갈겨 쓴 이력서(약 30분 정도밖에 작성하지 못함)를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와서 받았다. 면접전형에 와달라는 전화였다. 다행히 면접 갈 수 있는 날이어서 면접을 가기로 결정했다. 나이 40이 넘어서 이런 면접에 가게 되니 무척 재미있었다. 40이 넘어서 이런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12월이 넘어가야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생겨서 어떤 곳에 가도 상관이 없긴 했는데, 너무 이르긴 했다. 그래서 합격해도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아직 확실히 정하진 못한 상황이다. 그래도 지금 하는 일 보단 스트레스가 덜 할 테니, 면접은 봐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면접을 보게 됐는데, 아주 재미있었다. 면접관은 5명이 들어와 있었다. 사업단장님과 대학교 학장님도 계셨다(누구신진 모르겠지만).
5명 면접관에 3명이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젊은 여자였다. 나중에 면접 끝나고 대기실에 가니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던 거 같긴 한데 자세히 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 건 확실하다.
나이가 40이 넘어가서 이런 면접을 보니, 20대 때 보던 면접들이 생각났다. 대기업 공채 면접 땐 압박면접도 있었고 PT발표 면접도 했었다. 토론형식의 면접도 있었다. 모두 한 군데서 본 면접인데도, 네 가지 방식의 면접을 봤던 것 같다. 이런 면접전형을 다 통과하고 붙었다는 게 신기했다.
수없이 많은 면접을 봤었는데, 40이 되어 면접을 보니 면접이라는 것 자체가 되게 재미있었다. 지금 운영하는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면 나랑 대표님이 면접관이 되어, 이 사람에게 어떤 것을 물어볼지 고민하는 입장이었다. 이번엔 내가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었다.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질문을 하던 사람에서 질문을 받는 사람이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만 하면 될터.
첫 질문은 자기소개였다. 사실 내가 면접관일 땐 자기소개는 시키지 않는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소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시켜놓고 시간을 벌 수는 있다.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면접자의 경력, 이력, 자기소개서를 훑어볼 수 있다.
세 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은 자기소개를 준비해 왔다. 확 티가 났다. 나를 포함해 다른 한 명은 준비해 오지 않았다. 나는 상투적인 표현밖에 하지 못했다. 대기실에 앉아있을 때 '설마 자기소개를 시키겠어?'라고 생각만 하고 준비는 하지 않았다. 역시 재미없는 답변 밖에 할 수 없었다. 자기소개는 늘 그렇다.
사회초년생 때 대기업 면접에서도 자기소개는 있었다. 그때는 비유로 준비했었다. 와이파이에 비유하기도 했었고 스포츠 선수 누구와 비교를 하기도 했었다. 다른 지원자들의 자기소개를 들은 적도 많지만 지금까지 '와 대단해'하는 사람이나 답변은 없었다.
두 번째 질문은 지금 뽑는 사업단에서 하는 일을 아는 대로 이야기해 보라는 것이었다. 난 사실 잘 몰랐다. 면접이 끝나고 와서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추상적인 기사들만 읽을 수 있었다. 면접장에서 난 사실대로 말했다. '구체적으론 잘 모르지만 내가 해온 일과 사업단에서 할 일이 일치할 거라는 생각에 지원했다'라는 식으로 답변했다.
세 번째는 내가 생각하는 '워라밸'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시간과 연결시켰다. '야근을 해도 괜찮다' '일과 여가 시간은 분리되어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나한테도 똑같이 물어보길래 나는 대답했다. '워라밸은 시간보다는 그 조직과 나의 궁합이 잘 맞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게 즐겁고 행복하면 15시간을 일하든, 12시간을 일하든 상관이 없다. 오히려 더 오래 있는 게 행복할 수 있다. 내 경력을 보면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해왔다. 이것이 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워라밸을 찾기 위해 몸으로 실천했다' 이렇게 답했다.
사실 지금 연재분도 워라밸을 찾기 위한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에 대한 내 철학이 드러난 대답이었다고 생각한다.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번째는 우리가 하게 될 일이 아무래도 학생과 지역사회 노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많을 수도 있는데, 잘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상대를 해야 할 일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 보통 이런 대학교 보조 업무로 가는 이유는 사무나 행정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선데 지역사회를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이런 것 같다.
뭐 물론 난 경력자체가 사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수월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 MBTI까지 이야기해 주면서 말했더니 좋아하셨다.
다섯 번째는 내 단점은 뭐냐는 질문이었다. 정확히는 MBTI상 단점을 물어보셨다. 나는 너무 '내가 생각한 것이 맞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단점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질문이 이어져 나왔는데,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난 내가 다 맞다고 생각하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잘 맞춰준다. 내가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랬더니 '그럼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육체적으로는 러닝을 하고, 정신적으로는 독서를 한다고 대답했다. 내 브런치에 항상 해오던 말이고,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비록 지금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뛰고 있진 못하지만...). 그랬더니 수긍하셨다.
여섯 번째는 우리 사업 특성상, 지방 출장을 가서 3~5박 묵을 수도 있는데, 문제는 없냐는 질문이었다. 다른 지원자들은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완전 땡큐죠. 육아에서 해방되는데요?' 면접관들이 빵 터지고 어떤 분은 웃다가 눈물을 훔치셨다. 면접장에서 '완전 땡큐죠'라고 대답하는 인간은 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면접이라는 게 말이 무서워서 그렇지 사실 대화하러 가는 자리다. 꼭 붙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으니 말이 헛 나오고 무섭고 긴장되는 거다. 그냥 대화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아주 편하다. 그리고 떨어져도 되고, 붙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다. 오히려 나는 빨리 더 질문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애 낳고 나니 누군가와 20~30분씩 대화하는 게 그리웠다. 5명의 면접관이 내 이야길 신기하다는 듯이 들어주는 그 상황이 좋았다. 오히려 나는 면접을 보러 가서 힐링을 하고 나왔다. 면접이 끝나는 게 다소 아쉬웠다. 더 이야기하다 나왔으면...
준비한 것도 없다. 그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내 생각 즉, 내 철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과는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아직 12월까진 이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긴 하다. 어찌할지 아직 결정하진 못했다. 후... 그래도 다행인 건 희망은 있다는 것이다. 좀 더 스트레스가 덜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최소한의 4대 보험이 되는 직장을 다니면서 내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나이 40에도 할 수 있다는 것 등이 위로가 됐다.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희망이 있는 시간이었다. 계속해서 내 워라밸을 향한 여정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