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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유랑자 Jul 17. 2020

나는 페미니스트야

페미니스트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한국에서도 페미니스트는 최근의 가장 핫 한 화두다. 사실 한국사회에 페미니즘에 대한 성찰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페미니즘이 활발하였던 시기는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 90년대엔 꽤 절정을 이뤘었다. 7-8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을 시작으로 90년대엔 각 종 미디어에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출간되고 페미니즘 영화도 만들어졌다. 내가 청소년기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의 청소년 필독서였고, 델마와 루이스 같은 영화가 흥행을 하기도 했었고, 오숙희 씨 같은 분이 방송인으로 나오며, 혹자는 여성은 테러리스트라도 되라고 했다(물론 이 책의 저자는 내가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한국엔 IMF가 터졌고, 다들 먹기 살기 바빠지며 모든 정책은 친 기업형으로 돌아가며, 페미니즘의 목소리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보수정권이 집권을 시작하면서 그 가속도는 더욱 가파르게 변했다.


방송에서 성인의 여자들이 아기 흉내를 내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서 짝짓기 프로그램이나, 육아, 결혼 이야길 담은 방송들이 인기가 높아져 갔다.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대학은 공학으로 갔다. 대학에서도 나는 소위 “기 센 여학우”로 유명했다. 대학 선배 중에 한 명은 나에게 악담이랍시고 “너 그래서 시집이냐 가겠냐?”라고 했고 당시에는 “갈 생각도 없지만 간다 해도 선배랑은 안 할 거니 신경 끄세요”라고 했었다. 그래서 남학우으로부터는 꽤 적이 많았고 소수의 몇 명과 혹은 기 센 선배도 상관없는 남 후배만 있거나 비슷한 여학우들과 더 가까웠다. 졸업을 하고 비교적 남녀차별이 덜 하다는 패션회사 인턴을 시작했지만, 그곳은 비교적 남녀 차별이 다른 업계에 비하여 덜 하다고 했지만, 또 아이러니하게 절대다수의 임원은 남자였다. 실무진은 모두 여자였지만 그랬다. 


인턴을 마친 뒤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하고 인테리어로 옮겼다. 이 쪽은 건축과 가까워서인지 확실히 남자가 많았다. 그리고 패션회사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남녀차별이 심하다. 사회초년생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오류는 “여자는 여자의 적” “남자 상사가 관대하다”는 고정관념이자 프레임이다. 내가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자 동료나 상사들은 여성이 예쁘고 어리고 본인의 경쟁 상대가 아닌 “꽃” 같은 존재일 때는 친절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그 여성이 자신의 경쟁상대로 떠 오르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오히려 여성보다 더 치졸하고 잔인하다. 아마 조직생활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90% 이상은 동의할 것이다. 물론 힘들게 하는 여성 동지도 있다. 그중 상당수는 남자와 경쟁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부터 남자가 되어. 남자처럼 변해버린 사람인 경우가 많다.


스웨덴에 와서 놀랜 건 페미니즘은 그냥 당연한 것이다. 새 임원이 뽑혔을 때 그 임원소개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호모포비아가 아니고 레이시스트가 아니며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설사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남자들 역시 본인은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소개한다. 내가 몸담는 회사는 패션회사였기에, 시즌별로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회의에서 꼭 나오는 의견은 “지난 시즌엔 남자 아티스트가 많았다 우린 더 많은 여성 아티스트와 작업할 필요가 있다”이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아무도 역차별이라고 하지 않고 토를 달지 않는다. 우연히 내 스웨디시 친구들과 한국 예능을 보는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한국 예능은 왜 남자만 나오는가? 좀 이상하다”라고 질문했었다. 그리고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는 “왜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에게 폭력을 행사하는가”였다. 나는 적잖게 충격이었다. 예능은 나 역시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였고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이 강제로 손을 잡고 어딘가를 가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눈에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충분한 폭력이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나의 눈에 많은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요새 한국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 마치 검열처럼 “페미니스트세요?”라는 질문이 많다고 들었다. 당연히 그들이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요 이다. 이 곳에선 감히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질문을 하는 남자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일 수고 혹 하더라도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은 예스이다.


유엔에서 발표한 2018년 세계 성평등 지수에서 스웨덴은 3위였고 한국은 115위였다. 5위권 안엔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우리가 말하는 북유럽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였고 스칸디나비아에서 성평등 지수가 낮기로 유명한 덴마크만이 5위권 밖이다. 한국 지수는 그 마저도 2015년에 비함 3단계 오른 것이다. 이 수치는 우리는 인도네시아보다 낮고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일본보다 낮다. 우리보다 닞은 나라는 예멘이나 이집트 등 아프리카나 중동지역이다. 가끔 한국에선 가짜 뉴스처럼 한국의 성평등 지수는 세계 10위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엔이나 월드이코노미에서 집계한 성평등 지수만이 공신력이 있으며, 이것은 여성의 복지 사회진출 지수 등 종합적 객관적으로 집계 한 지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사람들은 적어도 오픈된 공간에서 스웨덴은 갈 길이 멀다, 다른 나라보다 높을 뿐 완전한 평등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겨우 115위를 두고도 남자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 역차별이다 말한다.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한국에서 있었던 일 중에 에피소드를 꼽으라면 밤을 새울 정도지만 한 때 아는 남자 동생이 “여자는 뽑아도 일도 안 하고 도망친다 그래서 여자를 기피한다”라고 하길래 “남자는 뽑아봐야 하루 만에 하는 일을 야근까지 하면서 2-3일 동안 하면서 일 많은 척하고 낮에는 담배 피우러 나간다”라고 하니 나에게 “누난 왜 이렇게 전투적이야. 나 페미니스트야 그래도 객관적 사실을 말하는 거야”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뭘 기준으로 사실이며 객관적인가 우선은 저런 말을 입에 담고 자칭 페미니스트인 거에 1차 놀랬고 페미니스트가 뭔지 모르는 거 같아서 놀랬고, 경험의 오류를 객관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거에 3차로 놀랬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풀어서 그렇지 셀 수 없는 사례가 많다.


어쩌면 페미니즘이 대두되고 나서 여혐 사이트가 생기고 흥행하는 건 어쩌면 남자들이 이제는 백기를 든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예쁘게 봐줄 “상대가 아닌 경쟁상대로 인식하기 때문에 나오는 반작용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정말 모르는 것이 있다. 남녀평등의 실현은 비단 본인의 입지를 잃는 것이 아니다. 남녀평등이 실현된 나라에선 남자는 더 이상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되고, 가정의 경제를 혼자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당신도 육아휴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리고 남자도 울어도 되고 남자도 약해도 된다. 이 곳에서는 가정주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정주부 비하가 아니라 사회적 시스템이 잘 되어있으므로 일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가정주부로만 있으면 밖으로 티를 내진 않지만 친구도 사귀기 힘들다. 특히나 외국인이 현지인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와서 남자든 여자든 일을 하지 않으면 뒤에서 현지인들이 더 많이 수군댄다. 많은 스웨덴 사람들은 일하지 않은 사람을 아주 이상하게 보기 때문이다. 파트타임이던 공부를 하던 어떤 식으로든 자기만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비단 여성만을 위한 분위기가 아니라 남자들을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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