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콘클라베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Feb 26. 2025
'콘클라베' 포스터'콘클라베' 포스터


2025.02.23.


이제는 허전한 종교칸을 채우려고 ‘천주교’를 쓰지만, 천주교에 관련한 영화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또, 이 시기에는 오스카 후보작들이 속속 개봉한다. 그만큼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뜻. ‘콘클라베’의 존재도 몰랐지만, 아카데미에 여덟 부문이나 후보에 오른 작품이니 안 볼 수 없었다.


‘콘클라베’는 교황의 서거로 시작한다. 그리고 제목대로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를 시작한다. 전세계에서 100명이 넘는 추기경이 바티칸의 시스키나 성당에 모인다. ‘콘클라베’는 과반수의 표를 얻은 추기경—교황이 나올 때까지 격리된다. 그 과정에서 음모가 드러나고, 유력 후보가 고꾸라지는 등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


고작 교황을 뽑는 투표 과정을 다룰 뿐인데, 왜이리 분위기가 쫄깃한지 보는 내내 과격한 액션이 없는데도 손에 땀을 쥐었다. 오히려 정적인 장면이 많고, 대화씬이 많은데 배우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만으로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특히, 교황의 죽음이 누군가의 음모 때문인 것처럼 연출되는데 유력 후보들이 하나같이 의심스럽다. 연출의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감독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리메이크한 감독이었다. 이 영화도 상당히 내 취향이었고, 아카데미를 비롯한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역시 잘하는 사람이 잘하나. 이 얘기는 잠깐 옆으로 치워두고.


영화는 현재의 종교를 과격하게 다룬다. 가톨릭이 가지는 수 천 년 역사에서 볼 꼴 못 볼 꼴 다 보았지만, 그 볼 꼴 못 볼 꼴은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콘클라베’라는 어찌보면 세상의 존경이란 존경을 받는 전세계 추기경들이 모이고, 그 중에 가장 성품이 좋은 사람을 뽑는 자리인 만큼 점잖을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른 후보가 뽑히지 않도록 물밑 작업을 한다. 예전에는 라틴어로만 대화했었는데, 이제는 영어, 스페인어, 아프리카 등 서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머리를 맞댄다고 깐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며 성소수자와 여성을 배척해야 한다고 하고, 이슬람과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유력 후보를 제끼기 위해 더러운 수를 쓰는 건 기본이고, 그 더러운 수를 밝히기 위해 죽은 교황의 방에 몰래 들어간다. 여기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단장 로렌스 추기경도 교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썼을 때, 폭탄 테러가 시스키나 성당을 덮친다. 바닥에 나뒹구는 로렌스 추기경을 내려보는 성화(聖畵)는 그를 나무라는 것처럼 보인다. 크흐, 연출 최고.


여하튼 점잖을 줄 알았는데, 전혀 점잖지 않은 선거를 거쳐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베니테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다. 우여곡절을 겨우 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 영화의 반전이 하나 더 나온다.

 베니테스 추기경은 선천적으로 자궁과 난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래 자궁 적출 수술을 받으려고 했지만, 하느님이 빚은 나를 부정하는 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 마음을 고친다. 이는 전 교황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추기경으로 뽑았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러면 교황직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했다. 로렌스 추기경도 언론에서 공격할 거라고 왜 숨겼냐고 말한다. 하지만 베니테스 추기경의 대답을 듣고, 나 역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반성했다. 남자가 아닌 것도 아니고, 그가 선택한 것도 아니다. 가지고 태어난 것을 주변의 잣대에 맞추기 위해 몸에 칼을 대면서까지 나를 고쳐야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나는 나다. 누구도 나를 바꿀 순 없다. 더욱이 신이 주신 몸을 인간의 기준에 맞기 위해 고치는 건 성직자의 논리라면 모순 아닐까?


종교는 전통을 지키려 과거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지금의 가톨릭의 교리를 가지고 과거로 간다면 이단이라고 배척당할 것이다.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여성의 참여를 인정하는 모습은 전통 주의자들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말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종교도 변해야 한다. 선입견을 버리고 변화해야 한다. 절대 확신을 가져선 안된다. 확신은 내가 가진 것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은가, 되묻는 의심이 종교인 나아가 모든 이가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다.

절묘하게도 로렌스 추기경의 세례명은 토마스다.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여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그 토마스. 이 영화를 이끌어가기에 적격인 인물이자 이 주제를 다루기에 아주 적격이다.


본 영화를 보면서 비단 영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은 너무 확신에 찬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간이 없다. 중간을 말하면 편을 고르지 않았으니 적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게 옳은가? 당신은 얼마나 옳은가? 나는 얼마나 옳은가? 우리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내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옳더라도 의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야 한다.


또한, 내가 바라는 누군가의 모습을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묻고 싶다. 그 모습이 내 생각—선입견과 다르다고 의심하고 고치려 들지 않는가 묻고 싶다.


내 생각이지만, 종교는 이래야 한다. 절대 손 대선 안되는 불가침 영역의 전통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악을 몰아내고, 스스로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콘클라베가 끝나고 로렌스 추기경은 방에서 힘이 없어보인다. 그때, 창문을 막았던 가림창이 걷힌다. 로렌스 추기경은 창가에 서서 재잘거리며 건물을 나가는 수녀들을 보면서 미소짓는데, 그 모습이 그가 뒤집어 쓴 어둠을 몰아낸 것 같아 무척 개운해 보였다. 성직자도 인간이다. 그 어깨에 짊어진 짐을 벗고 훌훌 날아가길 바랐다.


영화의 미장센도 칭찬하고 싶다. 중간중간 성화(聖畵) 같은 구도나 같은 옷을 입은 100여 명의 동일한 행동을 보일 때는 눈이 즐거웠다.


사운드도 죽인다. 로렌스 추기경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한 날카로운 현악기가 일품이다. 액션 장면이 없어도 심장이 쫄린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연출이 대단한 건지, 원작부터 뛰어난지 궁금하다. 책도 읽어봐야지.


#에드워드버거 #콘클라베 #기록 #영화감상 #감상 #2025년 


작가의 이전글 노스페라투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