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절로 무르익도록 서두르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두다.
하늬님 처음에 오셨을 때 기억이 나요. 엄청 의욕적이셨는데, 질문도 많이 하시고.
제가 그랬나요? (민망했다...)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 더 몸이 좋아진 것 같아요.
아, 그건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다!)
운동을 하다 잠시 쉬는 중에 트레이너님이 문득 1년 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말씀하셨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눈에 선하다, 내가 어떻게 했을지. 두 눈을 번뜩이며 이것저것 물어보며 이렇게 움직이는 게 맞는지, 자세가 올바른지, 근육을 잘 쓰고 있는지 등등 물었을 거다. 잘하고 싶은 마음, 앞서가고 싶은 바람, 하루빨리 회복하고 싶은 소망이 한데 모여 의욕 덩어리가 생겼을 터였다. 유육종증을 진단받고 살림의원에 가서 여러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선생님이 면역력을 향상하기 위해 운동을 추천해주셨다. 그 당시 살림에서 운영하고 있던 운동센터 ‘다짐’에 등록해 그룹운동을 시작했는데 몸의 상태도 잘 모른 채 빠른 기간 내에 수행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랐다. 그것만이 나아지는 척도라 생각하면서 몸이 어떤지도 잘 모르면서 마음은 이미 저만치 나아가고 있었다.
충만한 의욕과는 다르게 나는 운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코로나19가 심해지면서 집에서 운동을 하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고 그러다 대상포진에 걸려 꼼짝없이 쉬어야만 했다. 이제 다시 운동을 좀 해볼까 하는 찰나 스테로이드 부작용과 함께 갑자기 무릎 통증이 심해져 근력 운동을 꿈꾸기도 어려운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갑상선 수술을 하게 되면서 한동안 상체를 무리하게 움직여선 안 되었다. 굵직하게 몸과 관련된 사건들만 나열해 보았는데, 지난해는 이건 좀 너무한다 싶은 해였다. 물론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지만 생애주기를 되짚다 보면 2020년은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해였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큰 결심을 한다고 해서, 마음가짐을 다르게 한다고 해서, 활활 타오르는 의욕을 가진다고 해서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종종 잊었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몸도 마찬가지였다. 내 몸이었지만 ‘내 마음’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시킨다고 언제나 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능력치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내 경우는 그랬다. 그럼 난 지난해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스테로이드 덕분에 몸의 기운이 전반적으로 상승해 좋은 기운으로 매일 아침 운동을 했다. 그리고 친구와 100일 동안 매일 스쿼트 100개 하기 챌린지도 도전했다(대상포진과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고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갔다). 이 모든 것이 7월을 기점으로 많이 흔들리고 중단한 기간도 꽤 길었지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놓아버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근력운동을 조금씩 할 수 있을 때부터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어떤 스트레칭과 운동이 좋은지 배우면서 몸도 함께 점검했다. 무릎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 조치를 취해보고 아프지 않을 정도만, 그러다 조금 아프더라도 해봄직한 자세로 아주 천천히 해나갔다. 잠들기 전에 몸을 풀어주고 찜질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무릎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는 일은 이제 몸의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으면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날들이 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지도 않았고, 어떤 자세를 잘못 취하지도 않았는데 통증이 심해지는 날 말이다. 예전보다 몸을 조금씩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은데, 스트레칭도 예전보다 더 자주 하는데도 통증이 더 심해지거나 지속될 때는 이 모든 과정이 까마득해질 때가 있다. 통증이 영원히 지속되어 이대로 멈추어버릴 것만 같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그럴 때가 있다. 하지만 별 방법은 없었다.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결국 나와 함께 살아갈 몸이니까. 화가 나고 씁쓸했지만 처음으로 돌아가 무릎 주변 근육을 풀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폼롤러로 아픈 곳 주변을 풀다 보면 어느새 무릎에 말을 걸게 된다. 좀 속 시원하게 대화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운동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보게 되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콘텐츠 중 하나가 ‘00주 챌린지’이다. 상체나 하체, 또는 복근이나 엉덩이 등의 근육을 잘 단련할 수 있는 운동 루틴을 정리해서 알려준다. 영상 하단에 수백 개씩 달려있는 댓글 중에는 실제로 챌린지를 매일매일 꾸준히 하는 분들이 인증하기도 하고,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인증이 사라지면 댓글의 주인을 소환하는 대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챌린지를 하기 어려운 몸의 상태였을 때 그 영상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운동을 하게 되면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한정된 기간에 자신이 바라는 몸의 변화를 성취하는 과정과 결과는 분명 큰 기쁨일 것 같다. 지난해 친구와 스쿼트 100일 챌린지를 했을 때도 이를 포기하지 않고 이루었을 때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챌린지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것으로 끝은 아닐 텐데 말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몸을 바꿀 수는 없다. 평생 같은 몸과 동반자처럼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주는 몸이 아니기에, 화르르 타오르는 찰나와 같은 의욕의 순간도 한정된 기간에 주어진 챌린지들이 유행처럼 일어나는 현상에도 그 너머의 것을 생각하게 된다. 긍정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내 ‘의지’나 ‘마음’의 것이 아니기에 결국 어떻게 이 몸과 오랫동안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더욱 고민하게 된다.
올해 3월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아프지 않았던 곳이 아프거나 근육이 뭉쳐서 뻐근한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며칠 쉬거나 잘 풀어주면 나아지지만 어떤 부분은 한동안 지속되어 치료를 받기도 한다. 몸을 좀 더 이해하려고 시작한 운동인데 더 불편해질 때면, 몸을 잘 몰랐을 때보다 더 속상하다. 하지만 어디 도망갈 곳은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를 하거나 찜질을 하면서 슬쩍 대화를 시도해볼 수밖에. 맛있는 밥을 완성하기 위해 뜸을 들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처럼.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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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after time "She & 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