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 꾹 눌러왔던 내 안의 결핍을, 그게 굳이 부끄러웠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굳이 내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별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 겉으로 티를 안 냈다. 그게 습관이 되니 굳이 말하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말이 적은, 그렇지만 겉으로는 온화하고 흔들림이 별로 없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되었다. 내 안에는 파도가 일렁여도 거울 속 내 얼굴은 잔잔했을까.
딸만 넷인 우리집,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은 아름답게 남아있다. 해가 지면 그림자 놀이도 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대차게 자빠지기도 하고 가까운 곳에 큰 공원이 있어서 자주 놀러 가기도 하고. 어린아이도 동네 슈퍼에 담배 심부름을 할 수 있던(?) 시절. 어쨌든 밖에서 그저 뛰어놀던 시절.
그렇지만 집안에서의 기억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당시 건설현장에서 몸으로 일하셨던 아빠는 자주 술을 마시고 들어오셨다. 아빠의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좌우됐기 때문에 조마조마하던 날들. 어떤 날은 큰 소리가 나고 밥상이 엎어지고 언니가 맞기도 하고. 그러면 우리는 울고, 엄마는 우리를 위로했다.
딸 넷을 낳은 엄마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집에서 우리를 키우다가 어느 정도 지나서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딸 넷을 키우는 워킹맘. 술 마시는 남편의 아내. 엄마는 그렇게 우리를 키웠다.
“엄마는 산후우울증 같은 거 없었어?”
“그런 거 없었어. 기억도 안 나”
뭘 물어보면 기억이 안 난다는 엄마. 무언가를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정신없고 고단하게 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기 때문일까. 짐작도 되지 않는다.
우리의 가난이, 아빠의 술이, 엄마의 참음이, 경제적 결핍과 부모와의 어떤 정서적 교감의 결핍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이제와 생각하게 됐다. 아니 그간 회피해왔던 것일지도 모를 어떤 상처를 이제야 보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과거가, 그 시간이 모두 얼룩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경제적, 정서적 결핍은 당시 우리 상황에서 당연했고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우리를 키워준 부모님께는 감사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내 안의 어떤 결핍이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어떤 순간에 안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걸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출산과 육아였고.
산후우울증이란 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이고, 그것과 내 결핍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이를 낳은 이후 여러 혼란 속에서 나에 대해, 나의 과거에 대해, 나의 무의식에 대해, 나의 불안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내 마음을, 과거를, 생각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나의 장점이 제대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래야 아이에게 그 마음을 전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걸 위해 이 ‘재미없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인지도. 나도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