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다 보면 양육자도 함께 성장한다고들 했다. 나의 세계가 더 깊고 넓어질 것이라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어떤 삶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런데 산후우울증을 겪다 보니, 세계가 넓어지기는커녕 반대로 시야와 사고가 좁아지기만 했다. 불안했고 이 좁아진 세상에서 다시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친한 사람들과의 공감대가 적어지고 사는 모습이 달라지며 그들을 잃을 것만 같은 생각에 우울하고 슬펐다. 이제 다들 나를 떠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 혼자서 고립된 것만 같은 외로움.
그러던 중 친구가 집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왔다며 연락을 해왔다. 부모님 댁에 다녀오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는데 친구는 집 앞에 선물을 두고 갔다. 수선화와 그림책, 그리고 편지. 놓인 선물과 편지를 보고 눈물이 날 것 같게 마음이 뭉클했다.
사실은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친구는 내가 출산했을 때부터 집으로 내 간식이며, 아기 백일떡이며 장난감이며, 힘들어하는 내게 프리지아 꽃까지 보내주었다. 직장 동료들은 묵묵히 나의 컴백을 기다려주고 있고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육아 동지인 친구와, 언니, 동생은 필요한 물건과 아기 선물 등을 많이 건네주고, 우울증이 심했을 때 힘든 마음을 움켜쥐고, 그래도 그 힘든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할 수 있었던 상대였다. 그리고 내겐 늘 걱정해주고 함께 뒷받침해주시는 부모님도 있다. 감사한 일이다.
사실은, 도와주는 사람도, 마음 써 주는 사람도 많은데 힘들다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그렇게 주저앉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혼자 미리 한계를 긋고 겁을 먹고는 스스로 나의 세상을 점점 좁혀가고 있었던 거다.
우울이 시키는 마음.
물론 출산과 육아는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이고 일상생활이 달라지다 보면 서로 다른 상황 속 온전한 이해와 공감을 바랄 수는 없을 거다. 지금 이 시기에 잦은 교류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관계가 소원해지는 건 아닌데. 똑같이 나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어쩌면 아기로 인해 새롭고 더 깊어지는 관계가 될 수도 있는 건데. 그땐 그렇게 외롭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 낯선 일상을 함께할, 이 무거운 책임감을 매일매일 나눠 질 누군가가 절실했던 것 같다.
육아를 하는 데 최적의 조건이란 게 있을까. 결국은 지금의 달라진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더 기쁘게 받아들일 것, 새롭게 필요한 관계는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답일 거다.
아기의 세계가 매일매일 넓어지듯 나의 세계도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고, 조심스레 말해보고 싶다.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것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