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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머핀 Apr 27. 2024

일단 먹어야 살지

최근에 사람이 밥을 먹고 사는 게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회사에서 하는 '라마단 챌린지'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의 연중 행사인데, 한 달 정도의 기간동안 해가 떠있는 시간은 단식을 하며 기도를 드린다. 그래서 대부분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에 일어나 그 날의 식사를 한다. 해가 뜨고 나면 물을 포함한 모든 음식을 해가 지기 전까지는 먹을 수 없다.  


라마단 기간에는 식사는 해가 지고난 후에야 가능하다.


울 회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업무환경(Diversity & Inclusion)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간간히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행사를 열곤 한다. 그래서 하루 정도는 라마단을 체험해보자는 취지로 근무 시간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기를 실행해 본 것이다. '뭐 하루 쯤이야' 하고 가볍게 도전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몇 시간만에 깨달았다. 아래는 하루종일 굶은 날 시간별 나의 심경변화:


오전 8시: 일어나보니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이상적이라면 미리 일어나서 뭔가를 먹고 시작해야 되었겠지만. 제대로 굶어보기로 했으니 상관없다. 물을 딱 한잔만 마시고 하루를 시작!


오전 9시: 빈 속이 가볍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래! 굶는 게 가끔은 이렇게도 정신을 맑게 하는구나. 왠지 개운하네~~를 외치며 수도자가 된 느낌을 만끽한다. 커피도 마실 수 없으니 반만 깨어있는 것 같은 몽롱함이 있지만 그럭저럭 할만하다.  


오전 11시: 배고픔의 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난데없는 짜증이 슬슬 몰려온다. 잊고 있었던 맘에 안 드는 일상 이것저것을 떠올리다가 업무를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지만, 이내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오후 12시: 보통 같았으면 점심을 먹었을 시간이다.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고, 다시 5분후에 가서 또 열었다. 이따가 끝나면 어제 남겨놓은 저 샌드위치를 먹어야 겠군. 입맛을 다시며 다시 아쉽게 냉장고 문을 닫는다.


지난번에 만들어 먹었던 샌드위치와 김밥을 사진으로 감상하며 나의 위를 달램


오후 1시: 안절부절 책상과 냉장고를 왔다 갔다 한지 오래. 밥도 밥이지만 물을 5시간째 못 마시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매일 두 잔씩은 들이키는 커피도 아예 못 먹으니 기운이 더 빠지는 것 같다. 이걸 평생에 걸쳐 하고있는 이슬람교인 동료가 배고픔을 잊는 산책이나 다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추천해준다.  


오후 2시: 아무래도 일에 집중하기에는 기력이 없어서(라기보단 일이 하기 싫어서) 소파에 앉았다. 원칙대로라면 이따가 해가 지는 7시반까지 금식인데, 영원한 금식처럼 까마득해진다. 어제 저녁을 7시에 먹었으니 이미 19시간째 금식 아닌가?? 그래도 24시간은 거뜬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


오후 3시: 결국 참지 못하고 아까부터 봐 두었던 샌드위치를 집어서 한 입 물었다. 아아 살 것 같다. 혈관을 타고 온 몸에 당이 퍼지는 에너지 솟는 이 기분. 기왕 포기한 김에 커피도 한 입 냉큼 들이킨다.


오후 7시: 같이 챌린지에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까 뭘 이미 먹은 걸 비밀로 하고, 라마단 챌린지를 성공적으로 끝마친 걸 축하하며 하루를 끝낸다. 휴 7시까지 굶었더라면 의자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을 듯.


먹방이 유행할 정도로 음식이 넘치는 세상만 살아오다 보니, 배고픔은 너무 낯설게 느껴졌고 단 하루도 식사를 참지 못했다. 하긴 맛있는 음식을 찾는게 중요할 뿐이지 우리가 밥을 못 먹는 경우는 정말 드물지 않나. 식량이 부족한 전쟁지역은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걸까. 배고픔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을지 모르는 지구 다른지역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미안해진다. 식사만 챙겨 먹어도 살 힘이 생길터인데.


이번주의 소원: 굶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를. 배가 고프면 마음도 같이 불행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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