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건 거부한다
인생의 미스터리 중 하나. “왜 결혼 허락을 받고 결혼준비를 어느정도 하고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팅된 프로포즈를 하는거지?”
나는 내가 능동적으로 납득하지 않은/못한 걸 유난히 따르지 못하고, 남들이 다 따르는 관습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이곤 한다. 결혼준비단계의 프로포즈도 납득할 수 없는 관습 중 하나였다.
나는 ‘프로포즈’를 받고 싶지 않았다. 요란뻑적지근한 이벤트도, 결혼준비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무르기 어려워졌을 때 청혼하는 것도, 무리해서 ‘분위기있는’ 세팅을 하는 것도, ‘여성은 프로포즈를 못 받은 게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는 통념도 다 싫었다. 그 이벤트를 뒷받침하는 모든 근거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결혼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막상 결혼준비를 하지는 않은 어느 날, 단골 가게에서 내돈으로 사기는 아깝지만 예쁜 물건을 발견했다.
“지금 말해둘게. 나는 진짜로 ‘프로포즈’를 원하지 않지만, 그 상황이 닥쳤을 때 말로만 결혼하자고 하기도 애매하다고 생각해. 이미 반농반진으로 너무 많이 말해서 헷갈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결혼준비를 실행에 옮기자는 생각이 들면 저걸 내게 선물로 줘.”
‘올해는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고 몇 주 후, 나는 예쁜 꽃펜을 받았다.
나중에야 그 작위적인 프로포즈에 ‘미래의 반려자를 위해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남성을 걸러내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는 그 수준의 검증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나보다도 인권감수성이 예민하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페미니즘적인 이해와 감성이 발달한 사람과 연애를 오래 한 덕이었다. 애초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면 만나지도 않았을 내 안목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니까, 내 운에 감사할 뿐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받은 청혼이 좋았다. 솔직하지 않은 언어소통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좋았고, 여자와 소통하려면 이면대화를 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부수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무엇보다도 떨리는 너의 목소리에서, 나는 내가 원한다면 결혼준비에 착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내밀려서 하는 선택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결정한 결혼이라서.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알 수 없는 인생, 너와 함께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바를 만족하기 위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