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쓰고 첫번째 난관이라고 읽는다.
우리는 연애 2년차를 넘긴 때부터 틈만 나면 어떤 결혼식을 할지 그려보곤 했다. 일반적인 결혼식 스타일이 너무 싫어서!
남의 결혼식이야 축복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지만, 우리의 결혼식이 보통의 형식대로라면 결혼 준비과정부터 결혼식의 마지막까지 매우 괴로울 것 같았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여튼 싫었다. 애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기에, 우리는 특이한 결혼식을 그려보는 데 많은 데이트 지분을 할애했다.
전통결혼식 스타일, 공연 형식, 새빨간 드레스를 입은 신부, 한복드레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막상 결혼식 준비가 현실이 되니 그 어느 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무조건 결과가 좋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반대로 새로운 시도를 하면 망하기 쉽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자기만족적이고 미숙하기 짝없는 실험만을 할 만큼 우리는 뻔뻔하지 못했다.
맨주먹으로 모든 걸 시작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최소한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남들이 어떻게 결혼식을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결혼식이 갖는 의미가 뭔지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코엑스 인근에서 하는 결혼박람회에 참가신청을 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건 트라우마를 남긴 실수인지, 투지를 불태워주는 사건이었는지.
상업성의 끝판왕과 같은 환경, 넘치는 인파는 생각보다 견딜 만 했다. 문제는 한 웨딩플래너와의 대화였다.
“드레스나 스튜디오 메이크업 생각해둔 거 있으세요?”
“음...스메는 모르겠고요, 드레스는 흰 롱드레스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요. 컬러드레스나 한복드레스 종류로.”
“........왜요?”
“흰 드레스에 담긴 함의가 싫어서요.”
이 대답이 문제였다. 가까운 친구에게 말하듯이 속마음과 철학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
자격지심일까? 나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가 들리는 듯 했다(애인은 당황정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당황이든 불쾌감이든, 그 플래너는 ‘한복드레스 관련해서는 저 업체와 문의하라’며 우리를 토스했다.
웨딩플래너에게서 거부되고 주위를 둘러봤다. 신부를 꾸미는 업체가 8할을 차지한 박람회 장내를 둘러보니, 왜 내가 일반적인 결혼식을 질색하는지 드디어 알 수 있었다. 신부의 아버지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의 손을 넘겨받는 ‘늠름한’ 신랑. 이 스토리에서 신부란 신랑에게 넘겨지는 예뻐야하는 상품이었다. 결혼식이 신부 위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도, 일생에서 결혼식 때 가장 예뻐야 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그 날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 건네지는 상품이라면 당연히 결혼식 날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겠지.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크고 화려한 드레스는 다른 사람이 끊임없이 옷매무새를 다듬어줘야 하고. 그렇다면 짜고 치는 프로포즈의 존재 의의도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남편의 보조적 존재가 될 신부를 위한 마지막 영광의 순간 같은 것이다.
그런 결혼식 문화 속에서, 두 사람이 앞으로 씩씩하고 현명하게 삶을 함께 꾸리겠다는 의의를 담은 결혼(식)을 꾸릴려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리 없었다. 머리가 아팠다. 우리가, 내가 원하는 모양대로 살려면 그 날 마주했던 당혹스럽고 불쾌한 시선을 평생 마주해야 하는 걸까? 세상이 내 존재를 배척하고 부정하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나는 그날 저녁 앓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