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미 망해있다
날 해고해 줘
어느 날, 같이 창업한 동료에게 말했다.
"언젠가 내가 삽질하고 있다면 해고해 줘."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일 못하면 나가야지. 오늘이 됐건, 10년 후가 됐건."
"같이 창업한 건 알고 있지?"
"알지. 지분은 지분이고, 일은 일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나를 자르는 건 포기하는 게 아닐까?"
"...일이나 하자."
<규칙 없음>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넷플릭스, 지구상 가장 빠르고 유연한 기업의 비밀'이란 부제의 책으로, 넷플릭스의 성공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었다. 휴가 제한이나 비용 규정, 어떠한 승인 절차도 없는 넷플릭스의 문화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이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무섭도록 투명하고 냉정했다. '적당히 일 잘 하는 직원이 있으면 두둑한 퇴직금을 쥐어주고 내보내라. 그 자리에 탁월하게 일하는 사람을 업계 최고 대우로 모셔와라.' 이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물론 회사마다 규모와 비즈니스 모델이 제각각이니 무조건 벤치마킹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일에서 추구하는 'F&R(자유와 책임)'은,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사업에 뛰어들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우리는 자유롭게 일하고 싶어서 '내 일'을 선택했고,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도 짊어질 각오가 되어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넷플릭스처럼, 내가 하는 일에 객관적일 수 있을까?
객관성 없이는 자유도, 책임도 의미가 없다. 넷플릭스식 조직문화의 위대함은 빠르고 유연한 시스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시된 규칙 대신 '객관적 탁월함'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모든 구성원들이 합의했다는 점에 있다. 그 합의 안에서 '객관적으로 조직에 이롭다면' 모든 과정이 자유롭게 허용되고, 모든 개개인이 '객관적으로 멋진 결과'로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는 조직. 잠깐이지만 그런 회사를 꿈꿨던 것 같다. (커버이미지는 <규칙없음>을 출간한 넷플릭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상사도, 인사평가도 없이 일하면서 자신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함께 창업한 동료에게 그런 뜬금없는 부탁을 한 것이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내가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만두게 하는 것이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좋으니까 말이다. 창업자라 할지라도 장/단기적으로 가치를 창출하지 못할 경우 자르면 되지만(물론 그가 없이도 회사가 돌아갈 상태여야 한다), 사업이나 프로젝트가 객관적으로 가망이 없다면 망하는 수밖에 없다.
넌 이미 망해있다
매월 수 천 만원의 매출이 꾸준히 나오고, 수익률은 안정적으로 50%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첫번째 서비스를 종료시켰다.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었지만, 모든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객의 사진을 필요에 맞게 제작해주는 서비스였는데, 사진에 따른 퀄리티 편차는 도저히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건 알았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매일 만점의 후기를 받았는데, 동시에 강한 컴플레인과 환불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객관적으로 함량 미달의 서비스였지만 현실적인 개선의 여지가 없었다(우리 중에 사진 전공자나 개발자는 없었다).
또한 객관적으로 크지 않은 시장이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사진에 돈을 쓴 게 언제인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대단한 수익성을 약속하고 투자를 받기는 불가능했다. 시장의 점유율을 높여가며 큰 규모의 비즈니스로 성장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운 좋게도 서비스 오픈 3개월만에 5천만원의 매출이 났지만, 이후 1년 동안 그 규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카테고리의 업체들 중에서는 이미 가장 많은 광고 비용을 지출하고 있었고, 마케팅 규모를 늘리는 데에 따르는 매출의 성장은 점차 둔화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우리 개개인이 성장할 여지가 끝나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잘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그저 시장에서 수요와 트렌드를 파악했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화를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사진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매일 8시간씩 투입해야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었고, 시장에 나와있는 기술만으로 자동화는 요원해보였다.
고민이 컸다. 왜 우리는 매월 수 천만원의 매출이 나는 서비스를 접어야 하는가. 이렇게만 해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텐데. 객관적인 판단을 하고자 노력했다. 이대로 쭉 서비스를 운영했을 때의 모습과, 그 모습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까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우린 이미 망해있다. 앞으로 우리는 1)그저 그런 만족도의 서비스를, 2)크지 않은 수익을 유지하며 3)개인의 성장 없이 운영해나가야 한다. 개선의 여지는 없다. 그럼 이미 망한 거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자본금이 모인 지금이 프로젝트를 접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첫 서비스를 정리했고, 미련을 가져본 적은 없다. 두번째로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가 망해갈 때에도 말이다.
'내 일' ≠ 내가 좋자고 하는 일
망하면 어떨 것 같은가? 사실 망해도 잘 모른다. 아무도 당신이 망했다고 알려주지 않으니까.
'내 일'에서는 시작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우리 몫이다. 망한 시험이나 면접 결과처럼 친절한 안내를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어렵다. 누군가는 너무 쉽게 포기해서 얻어갈 것들을 모두 놓치고, 누군가는 제때 접지 못해서 소중한 자금과 시간을 잃는다.
'내 일'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경험이다. 마치 자녀를 키우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머릿속이나 기획서 상에서만 존재하던 것들이 형태를 갖춰 세상에 나오고, 고객의 선택을 받고, 크든 작든 보람과 수익을 가져다준다. 그럴수록 남의 눈에는 별 볼일 없을 로고 하나, 문구 한 줄에도 애정과 진심이 담긴다.
그 애착이 우리를 더 분발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망해가는 상황에서 집착으로 남아 객관적인 판단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만들어낸 것에 대한 집착은 자녀에 대한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대에서 벗어날수록 집착하게 되고, 집착할수록 기대에서 벗어난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점점 판단력을 잃을 경우, 잘 망하는 일과는 멀어지기 십상이다.
'내 일'은 결코 '내가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건 취미에 가깝다. 실패를 각오하고 세상에 무언가를 내놓을 때, 우리는 이미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데에 동의했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망하고 있다면 더욱 더 내가 만든 결과물이 아닌 이를 소비하는 고객과 시장에 집중하자. 언제나 그들과 동일한 관점에서 객관적이도록 노력하자. 언제든 그 담당자인 자기 자신을 해고할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일과 사업이 아직 망하지 않아야 할 객관적인 이유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