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희윤 Oct 30. 2022

공개적으로 망하기

망해서 남 줘야 한다

50조를 날린 남자의 초상


50조 원.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그룹이 올해 낸 적자이다. 2022년 우리나라 한 해 국가예산이 600조 원이니까, 대충 한 달 치 대한민국 운영비를 혼자 까먹은 셈이다. 감도 안 잡히는 금액이다. (0이 몇 개일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반년 만에 그런 천문학적인 적자가 날 수 있는지도 궁금한데, 더 궁금한 건 50조 원을 날린 사람의 얼굴이었다. 0.0001%인 5천만 원을 잃으면서도 나는 우거지상이었으니까. 뉴스를 접하자마자 유튜브에 들어가서 기자회견 풀 영상 을 찾아봤다.


그냥 평소와 같은 모습이었다. 달라진 것이 1도 없었다. 약간 씁쓸해보였을 뿐, 질의응답 중에 웃기도 하는 등 우리가 아는 친근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몇 년 동안 쌓은 수익을 모두 토해낸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혹시 사람이 아닌가?'


물론 그는 사람일 것이다. 1시간 반에 달하는 기자회견 동안 손정의 회장은 '반성'이라는 단어를 10여차례 반복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에도 막부를 연 쇼군)의 초상화도 등장했다. 그는 장수 시절 무모하게 치른 전투에서 엉망으로 패배하고 너무 두려운 나머지 바지에 똥을 지린 채로 도주했는데, 복귀하자마자 화가를 불러서 그 낭패한 모습을 초상화로 그리게 했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뜻이다. 손 회장은 발표를 시작하며 그 초상을 띄어놓고 이와 같은 심정이라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왜 이런 적자가 날 수 있었는지, 본인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최선을 다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마치 자신의 패배를 똑똑히 기억하라는 것처럼. (커버 이미지는 이에야스가 40년 뒤에 함락시킨 오사카 성)


어떻게 하면 사람의 멘탈이 저렇게까지 강할 수 있을까. 신기해하면서 관련 자료를 찾던 중 2010년 '소프트뱅크 신 30주년 비전발표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때도 그는 똑같은 표정, 똑같은 말투, 똑같은 확신이었다. 그 때 깨달았다. 이 분은 그냥 일을 하시는 거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적자를 내는 것도,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과오를 낱낱이 공개하는 것도, 한 치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 분에게는 그냥 일이다. '내 일'로 끝까지 가 본 사람의 경지란 이런 것이구나.


공개적으로 망해도 되는 이유


단서는 또 있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과 디캠프가 공동으로 발간한 <스타트업 창업자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가 10명 중 2명은 자살 위험성 고위험군에 속할 만큼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고 한다. 자금 압박, 조직 관리, 실적 부진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금전적인 보상이나 타인의 인정이 이들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타인의 시선이나 본인의 이미지 관리는 이들에게 사치인 것이다(그런 것까지 신경을 쓴다면 아마 자살 고위험군은 50%까지 늘어날지도 모른다). '내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자존심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보다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해서 불필요한 혼선을 막고, 잘 된 경험이든 망한 사례이든 공유해서 좋은 결과는 늘리고 나쁜 결과는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망하는 것은 전혀 멋있지 않다. 성공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가 '내 일'을 시작한 이유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제품이든 콘텐츠든 의미있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을 수도, 실패를 감수하면서까지 성장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아직 유의미한 결과가 없고, 실패가 턱밑까지 다가왔대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당당하자. 그리고 실패를 숨기지 말자.


내가 쏟아부은 열정과 얻어낸 경험을 뒤로 하고 은밀하게 사라지느니, 공개적으로 망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아래와 같이 중요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1.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


앞 글 <미련 없이 망해라>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망해가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망하지 않았음에도 두려워서 포기할 때가 있다. 심지어 망한 뒤에도 내가 무엇을 얻고 잃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는 직관이나 객관성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기에, 가끔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내 프로젝트나 사업이 망하고 있다면, (필요에 따라 내/외부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의견을 들어보자. 현재의 상황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당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누군가는 본인의 가장 솔직한 생각을 들려줄 것이다. 물론 그 의견을 받아들일지는 당신의 선택이지만, 적어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2.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광기를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광인이 아닌 이상 자신이 나쁜 선택을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 더 좋은 선택을 하겠노라고 약속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냉정하게 평가할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앞으로 더 나은 실행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과 같기도 하다. 


물론 다음 선택이 꼭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어도 당신에 대해 두 가지는 기억할 것이다. 1)당신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는 것과, 2)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 대단한 재능을 지니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느리더라도 바보 같은 선택을 하나씩 줄여나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가는 이런 방식이 옳을 때가 많았다.


3.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별볼일 없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성공해서 나타나는 것 만큼,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망한 모습으로 발견되는 것도 미디어가 좋아하는 클리셰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그렇게 되지 말자. 상대방은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곤혹스러울 뿐이다. 그것보다는 내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어떤 이유로 잘 안 되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미리 공개하는 편이 훨씬 낫다. 


내 경험에 따르면, 역경을 이겨내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응원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만약 무관심하거나 고소해하는 지인이 있다면, 냉정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거나 불필요한 관계를 끊어낼 좋은 타이밍이다.) 타인의 응원과 지지를 통해 우리는 실패를 보다 성숙하게 극복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요약하면 간단하다. 나의 실패를 겸허히 수용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공개함으로서,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드는 일. 혼자가 아님으로서 우리는 더 큰 회복탄력성을 가질 수 있고, 다가올 수많은 실패에도 담대하게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망해서 남 주기, 그러나 나를 위한


망하기 시작할 무렵, 가장 먼저 한 것은 블로그를 여는 일이었다.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다시 '나'로서 세상에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창업을 하면서 소셜미디어 계정은 일찌감치 폐쇄했고, 3년 반 동안 가졌던 사적인 만남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었다. 사업이 곧 나였고, 사업이 잘 되도록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는 고민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그런데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이 찾아왔다. 


기록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열었는데, 할 얘기가 없었다. 맛집부터 핫플까지 온갖 트렌디한 곳들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었고, 닥치는대로 책을 읽은 것은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온전히 사적인 영역에서의 경험이 아니었기에 내 이야기라고 할 수 없었다. 나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었다. 퇴사하고 창업해서 망한 이야기. 그걸 글로 써보자.


몇 편에 걸쳐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타고 들어왔는지, 재밌게 읽었다는 댓글이 달렸다. 퇴사하고 창업을 준비한다는 분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쪽지도 받았다. 흔한 자영업자의 망한 이야기인데, 감사하게도 누군가에겐 찾던 내용인 것 같았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사람에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재취업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력서 구석에 적어놓은 주소를 타고 블로그를 정독했다는 인사 담당자분도 계셨고, '왜 나를 면접에서 보고 싶었는지(항상 면접관에게 하는 질문이다)'에 대한 답변으로 대부분 블로그와 이력서를 통해 공유된 창업 이야기를 꼽아 주셨다. 독서모임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만났다. 책에서 얘기하는 내용과 사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연결되는 지점이 많았는데, 종종 정리해서 독후감으로 남기자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가 궁금했다며 반겨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내 일'이 망해서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일을 꿈꾸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여러 지인들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거나,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 일을 병행하고 있었다. 공통 화제를 가진 만큼 자연스럽게 그런 분들과 어울리게 됐고, 감사하게도 여러 제안을 받아 현재는 (가장 수익과 거리가 먼) 두어 개의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앞서 <어차피 68%는 망한다>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시작하는 '내 일'은 십중팔구 망한다. 그러나 체감상 그 이야기의 10%도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아까운 일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도전을 하거나, 우리처럼 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당신이 제품을 만들든 콘텐츠를 기획하든, '내 일'의 본질은 세상에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댓가로 세상(시장/고객)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준다. 실패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이에 상응하는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의 이야기가 세상에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이전 07화 미련 없이 망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