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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홍 Jul 02. 2024

희망을 팔고 있습니다

가네보, I HOPE (2024)

푹 눌러쓴 모자, 퀭한 두 눈, 푸석한 피부. 수십억짜리 광고 계약이 걸린 제안을 앞두면 잠잘 시간도 부족해진다. 그럴 땐 나조차 내 모습이 싫다.


알다시피 남에게 예뻐 보이려고 자신을 꾸민다는 건 이미 낡은 화두. 이런 시대에 화장품 대신 '희망'을 팔겠다는 브랜드가 있다.



화장품이 아닌, 희망을 팔고 있습니다


사람은 왜 립스틱을 바를까요

단순히 예뻐지기 위해서?

립스틱엔 그 이상의 힘이 있습니다

입술에 당신 삶이 깃들게 하고

본능을 자유롭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매 순간 충실히 살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그저 화장품을 파는 게 아닙니다

희망을 팔고 있습니다.





일본 코스메틱 브랜드 가네보의 광고인 <I HOPE> 편이다. 청바지에 흰 티 하나만 걸친 젊은 여성(나카지마 세나)이 파도가 부서지는 바닷가 바위 위에 맨발로 서 있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는 게걸스럽게 토마토를 베어 먹는다.


그뿐만 아니라 눈보라 속에서 양배추를 물어뜯는 장면도 세트장이 아닌, 홋카이도의 설산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 덕에 진정성 있는 이미지가 탄생했다.



삶을 이어가는 일, 즉 희망


광고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먹는다. 이는 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면서 동시에 립스틱이 지워지는 행동이기도 하다. 광고에선 지워진 립스틱을 다시 바르는 모습을 마치 삶 이어가려는 의지처럼 보여준다.

삶을 이어가는 일, 즉 희망이다. 광고에선 이 희망을 반짝이는 불꽃으로 표현했다. 마지막에 나오는 소년은 젠더리스 코스메틱을 지향하는 가네보의 다음 세대를 상징한다.



왜 화장품이 아닌 희망인가?


수만 가지 브랜드가 소리 지르는 가운데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 이야기를 하는 것, 동시에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모든 브랜드의 사명이다.


가네보는 화장이라는 행위 속 긍정적인 의지를 희망이라 부르고, 화장품이 아니라 희망을 팔겠다고 한다. 다소 뜬금없는 이 '희망'이라는 컨셉이 솜씨 좋은 카피라이팅 덕에 설득력이 생겼다. 때로는 이처럼 브랜드와 컨셉 사이의 머나먼 간극을 이어주는 게 카피의 역할이다.




마음을 흔들고, 편견을 무너뜨리고, 영감에 불 지피는 좋은 카피 이야기. 매주 화 연재.

문의 또는 메시지: @jaeho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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