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이하 사업장에서 카피라이터를 시작한 내 경력을 돌이켜 보면 좋은 환경에서 일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했다. 이런 '기다림'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는데, 바로 흑맥주의 대명사 기네스다.
기네스를 왜 기다림?
기네스 인증 바에 가면 바텐더가 정확한 각도와 시간을 지켜가며 기네스를 따라주는데, 이게 대략 2분이 걸린다. 거품과 맥주가 분리되는 기네스만의 독특한 대류현상 때문이다.
자칫 술자리 흥을 깰 수도 있는 이 '기다림'을 가치 있게 느끼도록 한 카피가 있다.
좋은 건 기다리는 자의 것 Good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
위 카피를 경이롭게 표현한 1999년 작 <서퍼>는 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받은 광고다.
의외로 서핑은 기다림의 스포츠다. 파도 앱을 확인해 가며 좋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파도가 좋은 날에도 완벽한 파도를 기다려야 한다. 기네스의 '기다림'을 표현하는데 서핑만 한 게 없다. 이 광고에서 아무 말 없이 서퍼 얼굴만 10초 넘게 보여주는 데는 그런 이유가 숨어있다.
광고 속 흰말은 맥주 거품을, 흑백 화면은 흑맥주를 상징한다. 파도의 포말이 마치 흰말의 갈기 같다고 하여 '화이트호스'라고도 부르는데, 파도에 진짜 말을 합성해서 (좋은 의미로) 정신 나간 비주얼을 완성했다. 그리고 마지막 카피가 영상을 한 줄로 꿰어낸다. 좋은 건 기다리는 자의 것.
놀라운 건, 원래 광고주는 기네스를 따를 때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었다!
젊은 세대가 기네스를 마시는 걸 꺼려할 수도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면 '다 마시기 전에 한 잔 더' 따위의 카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현업에선 이런 일이 빈번하다.
하지만 이 광고의 제작자들은 바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했고 기네스를 주문한 사람들이 기네스를 기다리는 행위 또한 원한다는 걸 발견했다. 그러고 나서 기네스의 슬로건을 '좋은 건 기다리는 자의 것'으로 바꾸자고 광고주를 설득했다.
그래서 결과는? 광고 방영 후 매달 올림픽 수영장 규모의 기네스를 팔아치웠다고 한다.
치명적인 단점은 유일무이한 장점이 될 수 있다.
자소서를 생각해 보자. 끈기가 없는 건 안주하지 않는 것으로, 쉽게 포기하는 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마찬가지로 광고는 브랜드의 자소서다. 브랜드의 치명적인 단점은 유일무이한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단점은 카피라이터가 그 가치를 발견할 때까지만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