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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18. 2020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를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소나기>를 읽고

-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읽는 베스트 한국 단편>에 수록 (글고은. 2007)     


2020.6.17. 수     


오늘은 <소나기>라는 걸 읽었다.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갈밭, 바투, 악상, 잔망스럽다’ 등등 내 또래의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 또는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년이 고리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라는 문장을 보자.

<바투>라는 글자의 뜻을 모르더라도 대충 소년이 고리를 잡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포인트의 뜻을 모르는 채로 와르르 쏟아진다면? ‘가방을 바투 쥐고 갈밭으로 가다 악상을 당했다’라고 쓴 들 제대로 쓴 표현인지 아닌지 이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좋은 점은 뜻을 모를만한 글자를 쉬운 용어로 풀이해 놓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잘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다. 남주랑 썸 타던 여자애가 병 걸려서 죽게 생겼는데 걔가 남긴 유언이 자기가 입은 옷 그대로 묻어달라고 하니까 어른들이 걔보고 잔망스럽다고 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엄마의 참견 >>>     

소나기는 황순원 작가의 유명한 작품이야.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많고 처음 보는 단어도 많지? 그래도 나름대로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바투’는 ‘길이가 매우 짧게’라는 뜻이야.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주는 척 후딱 올라탔다”는 부분은, 소년이 소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송아지 위에 올라타고 과시하는 장면이야.

고삐를 짧게 잡아 쥐어야 송아지 위에서 굴러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소년은 왜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을까?

시골에서 풀만 보고 송아지 보면서 외롭게 지내던 소년에게 어느 날 예쁜 소녀가 다가왔지. 그래서 소년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소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한 거야.

다르게 선택한다면 예쁜 꽃을 모아서 꺾어줬거나 맛있는 열매를 따다가 먹어보라고 줄 수도 있었겠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춘기 소녀를 만난 소년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을 거야.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애꿎은 송아지 등에 올라타고 힘자랑한 거였지.

소녀는 몸이 약해서 할아버지 집에 와서 요양을 했는데, 소년과 비를 맞고 돌아다녀서 그런 걸까. 몸이 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늘나라로 가게 돼.

네가 궁금하게 여긴 부분, 어른들이 왜 소녀에게 ‘잔망스럽다’고 표현했을까.

‘잔망스럽다’는 ‘몸이 작고 약하며 하는 짓이 경망하다’는 뜻이야.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은 옷을 꼭 그대루 입혀서 묻어달라구’ 했다는 소녀의 말을 두고 소년의 아버지가 표현한 말인데, '잔망스럽다'는 요즘에 자주 쓰이진 않는 말이긴 해.

그 당시(소설이 쓰인 당시)는 한국전쟁이 시작해서 끝난 무렵이었데. 아무래도 1953년도에 발표된 소설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쓰지 않는 단어들도 많고,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가 지켜야할 '우리말'이 많이 있다는 뜻이야.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소중한 한글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의미가 있으니 어려운 단어가 나오더라도 너무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어. 

전쟁이 끝나고 황폐해진 땅에서 작가는 이렇게 풋풋하고 동화 같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거야. 네가 어렸을 때 보아왔던 그런 그림동화와는 느낌이 또 다르지? 이젠 중학생이니까, 동화의 수준도 높아진 거지.

소녀는 죽을 때까지 소년과의 만남을 잊지 않았고, 잊고 싶지 않아 했어. 하늘나라로 가면서 외롭지 않고 싶어서였을까, 옷 입은 그대로 묻어달라고 했던 소녀의 마음을 한번 상상해볼까?

아빠 엄마 없이, 몸이 약해 할아버지 집에 와서 머물면서 소녀는 유일하게 나이가 비슷한 소년을 만나면서 즐겁고 따뜻한 감정을 느꼈을 것 같아. 어쩌면 소녀가 마음을 터놓고 표현하고 이해받을 수 있었던 존재가 소년이었을 수도 있어. 그러니, 마지막까지 소년과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었을 거야. 그리고 인사라도 한마디 하고 가고 싶지 않았을까? 그래서 소년과의 추억이 물들어있는 옷을 그대로 입혀달라고 한 것이었는데...

그런 소녀의 감정에 대해서 당시 어른들은 '쪼그만 게' 경망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잔망스럽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 같아.

우리 모두에게는 추억이 있어. 앞으로 너에게도 소나기의 ‘소년’ 같은 존재가 나타나게 될 수도 있지.

한 여름 갑작스레 내리는 ‘소나기’ 같은 감정을 만나게 되면,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도 한번 떠올려보렴. 엄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예쁜 추억을 만들어가면 좋겠어. 우리의 인생에서 소나기처럼 지나가는 인연도 많거든. 그때 나의 감정을 잔망스럽게 여기지 않고, 소녀처럼 용기 내서 자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길 바래. 물론 엄마에게 얘기해준다면 엄마는 ‘잔망스럽게’ 여기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고 설레는 시기를 보내도록 도와줄 거야. 어쩌면, 아마도? 너도 기대해보렴, 엄마도 기대할게.

소년과 소녀의 썸 타는 이야기가 비록 소녀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소나기>라는 작품은 오래도록 전해져 오는 우리들의 소중한 이야기야. ‘잔망스럽게’ 생각지 말고, 훌륭한 작가의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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