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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잠 Jun 19. 2020

황순원 작가의 <독 짓는 늙은이>를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독 짓는 늙은이>를 읽고     


2020. 6.18. 목     


이번엔 <독 짓는 늙은이>를 읽었다. 처음에 읽을 때는 글의 전체적인 흐름을 모르겠어서 다시 한번 차분하게 읽었더니 글의 내용이 전보다 더 이해됐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것인 것 같다.

아내가 조수랑 튀었는데 애아빠는 왕창 늙어서 힘들게 아이를 키운다.

온 힘을 다해 독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만든 독과 자신이 만든 독을 나란히 놓고 구워보는데 자기 독이 깨짐.

그러다가 가마 안에 들어가는 죽음을 선택함.

그리고 아이는 어떤 곳으로 보내지게 됨.

이 작가가 쓴 두 작품(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을 읽고 느낀 점을 리뷰하기에 앞서 공지할 것은 이 두 작품을 한 작가가 썼다는 것인데, 내가 느끼기에 이 작가는 뭔가 감명 깊은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소나기>와 <독 짓는 늙은이>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인데 썩 좋은 결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있다면 그 작가의 행복한 결말이 나오는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엄마의 참견>>>

만약에 조금 더 커서 이 작품을 봤다면 느낀 점이나 생각들을 좀 더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엄마가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거든. 하지만 지금은 중 1이란 나이에 이해하기는 어려운 점들이 을 텐데, 끝까지 읽어본 것을 축하해.

황순원 작가가 쓴 <독 짓는 늙은이>는  지난번에 읽었던 <소나기>와 함께 작가를 대표하는 3대 작품으로 불려.  

<소나기>, <독 짓는 늙은이>를 읽었으니, 참고로 다음 기회에는 <별>이란 제목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이야기를 읽었다면, <독 짓는 늙은이>에서는 제목에서처럼 '늙은이'의 이야기를 보았을 거야.

결말이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 결말에 '새드'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해.

어떤 결말을 부여하면 좋을까 생각해본다면, 우린 슬픔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불꽃의 의미를 붙잡아보면 좋지 않을까?

불꽃은 태우고 사르는 특징이 있지만, 새로운 것을 태어나게 하는 힘도 있어.

독을 구워낼 때 불꽃에서 단단하게 완성되듯이, 불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해.

어쩌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랄까. 할아버지가 남긴 '아들'이 어디선가 할아버지의 다음 세대를 이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테니까. 엄마를 이어서 너의 삶을 살아가게 되듯이 말이야. 마라톤에서 바통을 이어받듯이.


이 작품의 시작은, 독짓는 할아버지인 송영감이 늙고 병이 들자, 아내와 조수가 손잡고 도망을 가 버렸어.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말이야.

이쯤에서 뒷목 잡을만해. 그런데 할아버지는 욕은 좀 했지만 묵묵히 독을 지으며 계속해서 살아가. 어차피 그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진 않았을 거야. 평생을 독 짓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거부했고, 나중에 할아버지는 아들의 입양을 결정하고, 홀로 가마 속으로 들어가는 죽음을 선택해.

죽음만을 두고 본다면 너무 슬프고 이해하기 힘든 결말이야.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표현할 때에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해. 그런 점에서 새드엔딩을 살펴보면 의미있을 것 같아.


엄마가 보았을 때 할아버지의 마음이 가장 드러난 곳은 이 부분이었어.

아들을 좋은 곳에 양자로 보내달라고 앵두 나무 집 할머니에게 부탁하는 장면이야.

할머니는 아들을 보내는 보답으로 할아버지에게 돈을 전해줘.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돈을 거절하면서 아들을 데려가는 사람에게나 주라고 해. 아이를 업고 갈 사람에게 주어서 애를 잘 업어다 주게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보내는 장면까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그 부분이 엄마는 너무 슬펐어.

엄마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나이도 너와 같은 중 1 때였어. 그때에 엄마 역시 할아버지의 죽음을 결말로 기억했었는데, 이렇게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를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더  보였어. 소설 곳곳에 송영감이 아버지로서 얼마나 책임을 다하려고 했는지 절절하게 느껴졌거든.  

죽음은 누구에게도 기쁨이 될 순 없지만, 적어도 독 짓는 늙은이로 살다 간 할아버지에게는 가장 명예롭고 원했던 죽음이었을 것 같아.

새드엔딩으로만 기억하기보다는, 할아버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준다면, 소설 속에서 할아버지는 우리 삶 가운데 영원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보아왔던 수많은 동화와 달리 앞으로 읽게 될 이야기 중에는 어쩌면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보다는 누군가 불행해지는 새드엔딩도 많이 보게 될거야.

이야기를 통해 행복과 슬픔, 웃음과 눈물, 감정과 생각을 고루 경험하면서 알아간다면 결국엔 우리의 삶이 해피엔딩이 될거야. 그것이 우리 삶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는 방법이라고, 엄마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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