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잠 Jun 20. 2020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메밀꽃 필 무렵>을 읽고


2020. 6.19. 금


오늘 읽은 책은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이야기이다. 처음 읽었을 땐 모르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그리고 팁을 하나 얻었다. 이해가 잘 안 갈 땐 아무리 작아도 귀에 들리게 읽으면 이해를 빠르게 할 수 있다. 읽다 보니 궁금한 점이 생겼다.

첫 번째로, 나귀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가? 이야기 도중 이런 문장이 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라는 문장인데, 나귀의 수명이 적어도 20년은 돼야 함께 늙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나귀야, 너 몇 살까지 살 수 있니?)

두 번째, 지내다 보니 나귀 발에서 피가 나는데 그렇게 놔둔 주인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반긴다는 것은 나귀 주인의 착각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참견>>>

엄마가 보기에도 유난히 어려운 단어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엮어져 있는 이야기여서, 읽으면서 힘들었겠다 싶었어. 첫 문장부터 이렇게 시작하니 말이야.

"여름장이란 애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 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 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이 부분은 이런 내용이야.

'뜨거운 여름철에 시장 가서 일하기는 원래 힘들어, 해는 중천에 떠있어도 시장엔 벌써 사람이 없어 쓸쓸할 정도야, 날씨가 오죽 더워야 말이지. 마을 사람들은 거의 절반 가까이 가버린 뒤고, 제대로 판매도 못해본 나무꾼 패거리들이 길거리에 여기저기 머물고 있으나. 그 사람들을 바라보고 언제까지 있을 수 없어'


날씨 덥고 뜨거우면 거리에 사람도 없고 만사가 귀찮은 법인데, 나무꾼 패거리들이랑 뭘 하겠다고 그 더운데 시장에 있을 수는 없다는 신세타령으로 이야기가 시작해. 이렇게 복잡한 옛 어휘들이 흰 쌀에 콩 박혀있듯 콩콩 들어가 있는데 콩밥 싫어하는 네가 콩밥을 꾸역꾸역 먹는 거랑 비슷해 보이네. 그 와중에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시작부터 모르겠는 상황에서 끝까지 읽은 것이 대견해.


어렵게 느껴지지만 '메밀꽃 필 무렵'의 분위기가 자아내듯 이 이야기는 굉장히 따듯함이 스며들어있는 작품이거든, 마치 '메밀꽃 필 무렵'이 어떤지 알리가 없는 아이가 말로만 듣고서는 그 아름다운 풍경과 분위기를 짐작하기 어렵듯이, 이 작품도 헤매면서 근근이 읽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게라도 읽은 느낌은 남아서, 너의 마음 한편에 작은 꽃물이 스며들었기를 바란다.


너의 마음속에는 나귀가 인상에 남았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나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예전에 읽은 책 <그림동화>에 보면, 나귀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고 동물들에게 수명을 정해주었는데, 나귀가 가장 먼저 왔데! (그때부터 부지런했나 봐). 얼마나 사는지 물어보니 하나님이 30년이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나귀는 너무 길다고 투덜대면서 사람들이 부려먹고 고생만 시키니 수명을 줄여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하나님이 나귀의 목숨에서 18년을 줄여서 12년으로 만들었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귀의 수명은 얼추 20년 전후로 생각해볼까?

그럴 경우에 <메밀꽃 필 무렵>의 나귀는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는데, 20년 거뜬히 살아낸 나귀의 인생도 드라마틱해.


나귀가 볼 때 주인인 허생원이 참 가련해. 시장을 떠돌아다니는데 보아하니 자기 아들을 못 알아보거든.

나귀는 주인아저씨도 보고, '동이'를 보면서, 그들 곁에서 자고 달빛을 받으며 다니는 동안, 소원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고 상상해볼까.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너무 외롭고 고단해, 그 곁을 나귀가 지켜주는 것 같아서, 엄마는 허생원과 동이가 외롭지 않아 보였어. 

가까운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적게 표현하게 되는 모습을 나귀와, 허생원, 동이의 관계를 통해서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해.

서로가 모른 척, 못 알아듣는 척 무뚝뚝하지만, 서로가 없으면 허전하고 안되고 살아가는 데 힘이 툭 떨어지는 것 같은 관계, 그것을 사람들은 '가족'이라 비유해.

허생원은 나귀에게 무뚝뚝하고 툴툴거리면서도 애틋한 마음이 있었어. 나중에 동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짐작하게 돼. 

우리는 서로의 발에서 피가 날 때 치료해주도록 하자. 아픈지 보살펴 주고, 힘들 때 안아주고,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자. 때론 오해할 수도 다툴 수도 원망될 수도 있겠지만, 부모 자식의 관계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특별한 줄로 연결되어 있단다. 마치 밤하늘 어둑어둑한 길을 밝게 비추는 달빛처럼 그 자리에 여전히.


이전 03화 황순원 작가의 <독 짓는 늙은이>를 읽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