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작가의 <수탉>을 읽고
중 1 딸과 엄마의 책으로 대화하기
제목 : <수탉을 읽고>
날짜 : 2020.6.21. 일
오늘은 <수탉>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학교에서 금지한 행동을 했다가 정학 처리되고, '복녀'랑도 멀어지게 되는데, 수탉의 참혹한 꼴이 자신과 비슷해 순간적으로 화가 나 던진 물건이 수탉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스토리다.
근데 결말에서 그 모습을 본 주인공 '을손'의 오장이 뒤흔들렸다고 하는데, 여기서 '오장'의 뜻이 뭔지도 모르겠고 왜 넣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인공은 왜 닭이 맞은 걸 보고도 외면했을까?
또, 닭 맞은 물건은 뭐고 왜 옆집 닭은 주인공의 닭과 맨날 싸웠을까?
추가로 주인공의 동물이 닭으로 설정된 이유가 궁금하다.
또 이 글 앞부분에서 느낀 점은 주인공을 포함한 다섯 명이서 먹다 남은 것 마지막 한 개를 뽕잎 속에 넣어 방구석에 숨겼다는 내용이 있는데, 방 안에 덩굴들이 가득하지 않은 이상 방구석에 잎이 있으면 건들게 되는 게 당연한 결과인데 주인공과 나머지 네 명은 왜 이것도 예측하지 못했을까. 나라면 그냥 그 자리에서 다 먹을 거다.
엄마의 참견>>>
이효석 작가의 소설에는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해. 최근에 읽었던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나귀가, <돈>에서는 돼지가, 이번 소설에서는 '닭'이 나와서 이야기가 펼쳐지지.
작가가 소재로 동물을 등장시켰다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 거야. 이때 나오는 동물은
주로 주인공의 마음이나 상황을 대신 나타내는 존재거든. 그래서 동물이 어떤 일을 겪고 주인공의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면 이야기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네가 책을 읽고서 쓴 글 중에 '수탉의 참혹한 꼴이 자신과 비슷해 순간적으로 화가 나 던진 물건이 수탉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스토리'라고 쓴 것은 이해를 잘하고 표현한 거야.
수탉이 싸우는 이유는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서거나,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라고 해. 시골에서 할머니들한테 들었는데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싸우다가 죽을 수도 있고, 수탉 중에 힘이 약하면 왕따를 당해서 굶어 죽는 일도 있다 하더라고. 싸우다 피가 나서 깃털에 핏물이 들 때까지 지치지 않고 싸운데. 수탉의 운명이랄까?
나중에 볼 일이 있겠지만 김유정 작가의 <동백꽃>이라는 소설에도 주인공이 수탉끼리 싸움 붙이는 장면이 나와.
이 작품에서 하필 '수탉'이 주인공에게 미움받는 이유는, 주인공의 집이 가난해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기 어려운 형편인 것 같아. 이야기 앞부분에 이런 표현이 있어.
"두 마리를 팔면 한 달 수업료가 된다. 우리 안의 수효가 차차 줄어짐이 그다지 애틋한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제때 가질 운명을 못 가지고 우리 안을 헤매는 한 달 동안의 운명을 벗어난 두 마리의 꼴이 눈에 거슬렸다. 학교에 안 가는 그 한 달 수업료가 늘려진 것이다."
비실비실하고 약한 수탉 한 마리쯤 팔아버리고 학교라도 보내주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 주인공은 여러 가지로 못마땅하고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아. 그래서 학교도 못 가게 만드는 이놈의 수탉이 볼 때마다 거슬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보기 싫었겠지.
그런 자신마저 못마땅해서 하는 짓이, 남에 밭에 들어가 사과를 훔치거나 어른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일이었어. 결국 들통이 나서 학교에서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복녀와도 못 만나게 되었지.
안 그래도 싫은데, 그런 일을 겪으니 자기가 해놓고도 자기 행동이 더 못마땅하고 맘에 안 들어서 애꿎은 수탉에게 화풀이를 해. 그건 자신을 향한 화풀이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이 많아지는 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야. 무엇을 알고 싶은지, 모르는지, 어떤 것을 알아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으니까. 방안에 뽕나무가 있었던 것은, 주인공 집에서 누에를 키웠거든, 누에는 뽕잎을 먹고 자라니까. 아마도 방 안에 뽕잎을 두었을 거야. 그 뽕잎 더미에 무심코 뭔가를 숨겨놓기가 좋았겠지?
이야기의 결말은 간단하게 표현되었지만 곰곰이 곱씹어보고 상상을 해보면, 어린 을손이의 마음도 짠하고 을손이의 행동으로 인해 수탉의 죽음이 암시되거든. 그래서 안타까움이 절정에 이르러 끝나는 것이 딱해.
소설에 '앙상한 밤송이 같은 현실'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더 아픈 게 느껴지는 것 같아.
무기정학을 받은 데다 학교에서도 다시 오라는 통지도 없어 상심이 큰 데, 그런 주인공에게 어슬어슬 돌아오는, 또 싸움에서 져서 피가 나고 다리까지 저는, 눈도 찌그러지고 털이 피로 물든 수탉이 눈에 들어와.
그때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돼... 그 꼴을 해서 살아는 뭐하냐며 수탉에게 손에 잡히는 데로 뭔가를 다 집어던지고 결국 수탉은 큰 상처를 입고 힘없이 바둥거릴 뿐이야. 이에 주인공은 그때서야 정신이 좀 들게 되는 듯하고.
'끊었다 이었다 하는 가엾은 비명이 을손의 오장을 뒤흔들어 놓는 듯하였다.'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드는 거지. 수탉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신이 한 일을 자신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고 되돌릴 수도 없는, 그렇다고 뛰어가 수탉을 품에 들어안지도 못하는 마음,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주인공은 그저 자신의 못난 모습을 다시금 보게 되는 거야. '아주' 제대로 못난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