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가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감자 역병이 돌아서 감자를 먹을 수 없게 되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말을 듣는데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해서 그것을 글로 좀 써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속에 알고 있는 것들을 글로 다 풀어내면 좋을 텐데 글을 써보라고 하면 잔소리가 될까 봐 어떻게 글을 쓰게 만들까 연구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면 매일 글을 쓸 것인가.
그랬더니 아이가 계약서를 만들어왔다.
잔소리 금지 계약서 by 아인잠's girl.
엄마는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잔소리도 안 하기.
딸은 매일 저녁마다 엄마에게 독후감을 한 장 써서 주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의 매일 글쓰기 - 잔소리 금지 - 는 계약이 성립되었다.
독후감과 일기 중에 쓰기 편한 것을 써도 된다고 했더니 독후감을 쓰겠다고 했다.
일기는 재료를 다 준비해서 다듬어서 요리해서 내가 차려먹어야 할 것 같은데,
독후감은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서 맛있게 먹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서
아이는 독후감은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재미있게 쓸 수 있다고 했다.
남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비유하다니...
다른 사람이 정성껏 쓴 글을 읽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맞다. 책 읽기는 그런 것이다.
앞으로 전화번호부 두께만 한 한국 단편소설 모음집을 다 읽기로 했다. 한 편 한편 읽을 때마다 매일 독후감 한 장씩을 쓰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일체 공부, 숙제, 학원, 기타 등등 모든 면에서 잔소리 금지.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잔소리를 했냐고 억울하다고 했더니,
원래는 안 한 게 맞는데 며칠 전에 그동안 참아온 잔소리를 폭풍처럼 쏟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무슨 잔소리를 그렇게 했냐고 했더니 '얘들아, 우리 공부도 좀 하면서 지내면 안 될까?'라고 했단다.
얘들이 진짜 잔소리를 못 들어봤나, 잔소리가 뭔지 알기는 하나...
내가 맘만 먹으면 더할 수도 있지만, 잔소리로 변화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안 할 뿐이다. 하는 내 입만 아플까 봐.
암튼, 우리의 계약은 성립되었고,
이제 둘째와 계약할 일이 남았다.
7살인 막내는 계약 안 해도 뭐든 엄마가 하자 그러면 신나서 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한창 살판나게 놀고 있는 첫째 둘째를 구워삶아서, 매일 글쓰기를 하는 것으로, 나는 이 놀고먹기 대장들을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남들한텐 돈 받고 수업하는데 이 녀석들이...
그리고 큰 아이는 요즘 키보드 자판을 익히고 있다. 내년부터는 수필을 쓰게 할 생각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노트북을 이용해서 자신의 글을 써나갈 수 있도록. 나름 선행학습.
그 정도는 흔쾌히 '잔소리'로 여기지 않고 신나게 따르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아이의 국어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수학을 '아주' 못했는데 국어를 '너무' 잘해서 선생님이 되었다고. 아이는 그 말에 자신이 수학을 '적당히' 해도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국어, 과학, 미술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의 판단에 나는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공부란.
아무리 들들 볶아도 애가 해야지 엄마가 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하기에.
어느 교육전문가가 '어머님, 그러시면 아니되옵니다'하더라도, 나는 '와서 키워줄 것 아니면, 내버려두세요'라고 할 것이다.
오늘의 계약 성립은 아이 주도'계약'으로서 의미가 있고, 나의 빅픽쳐는 내년에 아이의 수필을 책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미래 웹툰 작가의 얼렁뚱땅 독후감 쓰기. 재미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