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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 걸으면 3분 정도 감동하는 순례길

ep8. 0.83%의 감동으로도 괜찮은 걸까

by 양탕국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많은 후기를 읽었다. 이 길을 걷는 건 지금껏 해온 여행과 다른 형태이기에 준비물도 빠짐없이 챙겨야 했고, 길이 어떤지 몇 구간만이라도 미리 확인해서 내가 걸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고 싶었다. 순례자에겐 너무나 유명한 네이버 카페를 수시로 들락날락거리고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순례길 준비 과정과 후기 등을 찾아보았다. 평소 여행 유튜브를 즐겨보는 편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순례길 영상은 틀어놓고 계속 보게 됐다. 어느 날은 4시간이 넘는 영상을 저녁부터 죽 재생해 두고 밥 먹으면서 보기 시작해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본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처럼 울컥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이 ‘순례길을 가려면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든 듯하다. 그러나 ‘많은 후기’라고 해봤자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일 것이다. 어느새 ‘귀찮음’은 ‘직접 경험을 위한 절제’로 둔갑했다. 그리고 아마도 4번째 순례길 유튜브 영상을 보던 날, 나는 직감했다. 아, 나는 저렇게까지 감동하진 않을 것 같은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버킷리스트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간의 여행과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얻길 기대하며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순례길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글과 영상에서 자주 만나는 표현은 자아 발견, 치유, 정서 안정, 내면 탐색 등인데, 이 외에도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내용들은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벗어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갖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정서적 안정과 건강을 찾고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를 그려보게 되었다는 꿈같은 이야기다.

사실 나는 자아 발견이나 치유,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상황도 아니었고(평소에도 이런 것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지나간 일에 대해선 ‘그때 내가 최선을 선택했겠지’라며 합리화를 하거나 ‘앞으로 그 실수는 반복하지 않으면 되지’라고 역시나 합리화를 하는 편이고, 현재에 관해서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법’에 집중한다. 혹여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욕 한 번 하고 흉 한 번 시원하게 보면 제법 풀리는 편인데, 다행히도 욕이 나올 만한 환경에선 동료들과 공감대 형성이 잘 이뤄져 오히려 사람들과는 좋은 관계를 형성하곤 했다. 미래에 대해서도 ‘닥치면 하게 되어있다’거나 ‘굶어 죽진 않겠지’ 같은 생각을 하는 ‘자기 합리화 대마왕’이랄까), 그렇기에 대단한 깨달음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이 타이밍이라는 이유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이번엔 몸이 힘든 곳을 가고 싶었다.

순례자들이 꼭 찍는다는 키다리 그림자샷(좌), 항생제를 먹지만 기침이 바로 나아진 건 아니라 한동안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우)
커다란 배낭을 지고 걷는 순례자들. 오른쪽 사진의 순례자는 무릎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힘든 델 오고 싶었다 한들 이건 좀 너무 힘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더러 했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와 양치를 살금살금 하고 길을 나선 뒤 평균 7시간가량을 걷는 일. 중간중간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최소 6시간, 거리가 어느 정도 될 경우 9시간까지도 소요됐다(나는 주로 20km 안팎으로 끊어 걸었고, 가장 많이 걸은 날엔 대체로 평지로 이뤄진 길을 29km 걸었다). 게다가 최소 5km는 걸어야 마을이 나타난다. 드넓은 밀밭이 펼쳐지고 그늘도 찾기 어려워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 불리는 메세타 평원 구간에선 10km를 걸어야 겨우 카페 하나가 나올 정도였고, 어느 땐 18km를 내리 걸어야 음료수라도 사 마실 수 있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물과 간식을 챙겨 가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카페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인즉슨 화장실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다. 때문에 무턱대고 먹고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마음의 깊은 곳, 내 삶의 기록들을 톺아보거나 살필 여유도, 체력도 내겐 없었다. 거기다 나는 초반 5일 이후엔 한동안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고 걷다가 내 체력에 따라 오늘 묵을 마을을 정한 후 그제야 그곳에 있는 알베르게를 예약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오늘 어디까지 가지?’, ‘어디에서 자야 하지?’, ‘다음 카페(화장실)는 어디지?’, ‘언제 도착하지?’ 같은 생각만 하기에도 버거웠다. 걷기 시작하고 거의 2주 간은 감동은커녕 이런 생각들만 하며 걷느라 풍경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중간에 기침 문제로 며칠 쉬기까지 했으니 어떤 감상이 일어나려고 해도 중간에 맥이 끊겨버리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인스타 스토리에 순례길 기록을 업로드했더니 몇몇 친구들로부터 감상을 묻는 메시지가 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답했다. “순례길 걸으면서 어떻게 멀티태스킹으로 내 삶을 돌아봐? 그러려면 3대 600은 치는 체력왕이어야 할 것 같은데?” 농담 같지만 반 이상은 진담이었다. 정말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멀티태스킹으로 걷기와 내면 탐색을 동시에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특별한 감동도, 감상도 없는 채로 아직 다 낫지 않은 기침 탓에 마스크를 쓰고 여전히 콜록거리며 걷고 또 걸었다.


걷다 보면 맑은 하늘 아래 있다가 흐린 하늘로 변하기도 하고, 산을 만나기도, 동물 떼를 보기도 한다.


그렇게 순례길에 오르기 전 짐작한 대로 나는 이렇게 감동 없이 주야장천 걷기만 하고 체력을 고갈하다가 순례를 마치는 걸까,라고 생각할 때 즈음이었다.

그날은 나헤라(Nájera)에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Sto Domingo de la Calzada)까지 20.7km를 걷는 날이었다. 여름 순례자는 한낮의 뜨거운 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걸어야 하는 고난을 견디는 대신 드넓은 밭에 해바라기가 만개한 장관을 볼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이후로 수많은 해바라기밭을 보긴 했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마주한 첫 번째 해바라기밭이라 많은 순례자가 기꺼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특히 1열에 있는 해바라기엔 표정이 있었는데, 이전에 이곳을 지나간 이들이 해둔 것일 터였다.

내 이름에도 있는 H를 새긴 해바라기도 있어서 이 꽃과는 셀카를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10분 남짓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골길을 걷다가 까미노 어플이 안내하는 대로 (아마도 내 기억에는) 좌측으로 꺾었는데 웬걸, 내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만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미리 고백하건대 나는 우리나라의 김제평야 같은 곳엘 가본 적이 없다. 그저 교과서를 통해 드넓은 황금들녘을 자랑하는 거대 곡창지대라고 배운 것만 어렴풋이 기억할 뿐이다. 아마 내가 마주한 광경이 스페인의 김제평야 같은 곳이었을까?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정말 넓디넓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너른 평야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저 멀리까지 내다봐도 건물 한 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걸을 때엔 밀 수확이 끝난 것인지 밀이 베인 흔적만 남은 걸 꽤 많이 봤는데 그래서일까, 그 흔한 농기계도 거의 나와 있질 않았다. 끝없이 펼쳐진 것만 같은 황금빛 평야에 보이는 건 터벅터벅 걷는 순례자들뿐이었다. 정말 비현실적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걷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순례길을 시작한 지 딱 14일 만이었다.


그즈음, 지도교수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사실 나는 순례길에 오르기 전 졸업논문을 수정하여 한 학술지에 투고를 한 상황이었고, 감사하게도 아주 일부만 수정 후 당호 게재라는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여행 전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곧 떠나는 여행에 배낭을 메고 가니 충전기까지 합하면 약 1.5kg씩이나 되는 노트북을 가져갈 순 없다’고 말해둔 탓에 수정 시간은 적은데 고쳐야 할 내용은 방대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특히 통계 프로그램을 다시 돌리는 등 컴퓨터가 반드시 필요하단 소식을 순례길을 걷는 중 들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니 아찔했다), 다행히 이론 중 일부만 보강하면 되는 정도여서 휴대폰으로 파일을 수정해 가며 교수님의 피드백을 듣는 중이었다. ‘노트북 미지참 선언’을 한 지라 내가 현재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게 됐는데, 사실 그 직전 메일에선 이 여행에서 특별한 감동도 감상도 없다고 적은 터였다. 그런데 드넓은 평야를 마주한 후 나는 교수님께 받은 메일에 답장을 하며 이렇게 적었다.


“그동안은 ‘내가 언제 이런 길을 걸어보나’ 정도만 생각했는데 걸은지 2주쯤 된 이제야 풍경도 보이고 며칠 전엔 처음으로 걷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간 보지 못했고 볼 거라고 기대하지 않은 풍경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매일은 아니고, 아주 간혹 하루에 6시간쯤 걸으면 3분 정도인 듯합니다.“


그러자 교수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질적 방법론의 유의미성을 가미하면, 여정의 0.83%(6시간 걷고 3분이나마 걷길 잘했다고 느끼니)는 제대로 건지겠다. 다치지 말고 계속 전진해라.”


이게 사회과학자의 유머일까 잠시 생각했는데, 그만 생각하기로 하자. 물론 교수님이 저 말만 한 건 아니고 ‘지난번 메일에서 여행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해서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말인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블라블라…’ 같은 내용이 선행했다.

아무 감상도, 감동도 없는 게 아닐까 염려한 것조차 사실은 순례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조바심일지도 모른다. 순례자 수만큼의 순례길이 있다고, 그 모든 여정은 마땅히 존중받을 만큼 특별하다고 말한 건 나인데, 남들과 다를 것 같다는 이유로 조급함을 느꼈고, 그마저도 몰랐던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0.83%의 감동은 있는 순례길, 그게 바로 나만의 순례길이었다.


순례 2주 간 느낀 0.83%의 감동 중 일부를 공유한다.

나헤라 골목을 채운 한낮의 볕
나바레떼(Navarrete)에서 먹은 맛있는 핀초스와 코스 요리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자다의 성당 타워에서 본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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