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문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명석 Apr 07. 2019

무한한 애정과 무모한 집착의 미묘한 경계

#브런치무비패스 #나의작은시인에게 #킨더가든티쳐

때로 어떤 영화는
한글 제목보다
원문 제목 그 자체를
주목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 번역하거나 한국으로 해당 콘텐츠를 가져오시는 분들의 생각하시는 나름의 해석이 가미되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원문의 의미를 풍부하게 잘 살려 더욱 시너지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번역자의 심오한 배려에 오히려 이해가 더욱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영화는 저에게 2번째에 해당하는 영화였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나의 작은 시인에게(2019)"입니다. 영어 원문은 "The Kindergarten Teacher"입니다.


이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 이스라엘에서 2014년 개봉한 "Heganenet - The Kindergarten Teacher"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본 작품은 2018년 미국에서 동일한 제목인 "The Kindergarten Teacher"로 리메이크되어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상영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든 이 영화가 2019년 4월 한국에 "나의 작은 시인에게"라는 제목으로 한국 관객을 찾아왔습니다.


아래 예고편을 보면 원작과 리메이크 영화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 듭니다.

*아래 내용은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을 수 있으니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8년 미국 리메이크작
2014년 프랑스, 이스라엘 원작

이 영화는 아이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이 두 작품에 대한 번역을 아래와 같이 하였습니다. 

2014년 원작 "Heganenet - The Kindergarten Teacher" - 시인 요아브

2018년 리메이크 "The Kindergarten Teacher" - 나의 작은 시인에게


차이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 영화의 원제는 유치원 선생님, 그 자체에 대한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본 영화는 2018년 미국 리메이크작을 보았습니다. 또한 후술 할 내용도 해당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목은 관객이 작품을 선택하는 그 순간부터 어느 정도 스토리를 예상하고 이야기의 중심인물을 잡은 뒤 영화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히려 한국어로 된 저 제목들은 충분한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천재 소년의 재능을 발견한 스승이 그와 함께 세상의 편견 속에서 그 능력을 증명하는 성장 스토리로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영화와 관객이 서로 다른 기대를 하고 만나게 되는 순간 스토리에 집중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시에 대한 재능이 없는 유치원 선생님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학생을 보고 느끼는 묘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 성인이 느낄 수 있는 고독감을 포함한 집착과 애정에 집중하시면서 보신다면 이 영화는 다른 깊이로 여러분에게 다가오실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때로는 원작 제목이 영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출처:씨네21


본격적인 글에 앞서 간략한 스토리를 전하고자 합니다. 혹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 중 스토리에 대해 미리 아는 것이 민감한 분들께서는 영화를 보시고 아래 글을 읽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한 소견을 드리자면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아시고 보신다 하더라도 그들의 감정선을 좀 더 집중하며 감상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 유치원 선생님인 리사는 평생 교육으로 "시 수업"을 듣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실력과 지루한 일상으로 그녀는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기 전 대기하고 있는 학생 "지미"의 중얼거리는 혼잣말을 듣습니다. 그녀는 상당히 놀랍니다. 수준급의 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늘 가족 속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혼자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미"의 보석 같은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나름의 무한한 애정을 쏟습니다. 하지만 관객에게도 그녀의 관심과 사랑은 애처로울 정도로 공허하고 집착적으로만 보입니다.
이 영화는 그녀가 주인공입니다. 그녀의 감정을 집중해 보시면 좀 더 영화를 즐기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독한 그녀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주지만

영화 초반부터 늘 외롭습니다. 


청소년기의 자녀들과 냉랭한 분위기 되기 일쑤고 남편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만 그녀가 원하는 만큼 가슴 깊은 공감대가 있진 않습니다. 동경하는 시 수업 강사와 충동적인 관계를 가지지만 그뿐입니다. 사랑스러운 학생들이 있지만 그녀의 깊은 고독을 해소할 만큼의 대화를 하긴 쉽지 않습니다. 함께 일하는 어린 여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애정을 쏟고 싶은
한 아이가 나타납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중 우연한 기회로 발견한 "천재 시인 - 지미".

그녀가 보기엔 그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보호자들은 정작 그 아이의 창작 능력에 대해 무관심한 것으로 느낍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 아이의 재능을 알리고 싶어 하고 가르치고 인도하고 싶어 합니다.

아이들이 놀 때와 낮잠을 잘 때 따로 불러 시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선택받은 사람들만 낭독할 수 있는 시 낭송회에서도 발표를 시킵니다. 
아이가 시적 영감이 떠오르면 언제든 "시가 떠올랐어요"라고 말하게 교육시키고 그녀는 아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만사를 제쳐 두고 아이의 시를 받아 적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유치원 외 시간 파트타임 보육 교사를 자청하며 아이에게 미술관을 데려가는 등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주고자 노력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반대하자, 그녀는 큰 결심을 하고 아이를 데리고 국경 인근의 대 자연 속에서 시적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서서히 그 아이만큼은 언젠간 이러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라와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영화 후반부 대자연 펜션 속에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 경찰서죠.
저 유괴당했어요.

그리고 아이는 그녀가 없는 경찰서 속에서 혼잣말을 합니다. "시가 떠올랐어요" "시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며 영화는 마칩니다.



어긋나 버린 애정, "유치원 선생님"그녀


그녀는 사람들에게 늘 애정을 주지만 동시에

그녀는 초반부터 늘 주변인들에게 불편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에도 악의는 없기에 뭐라 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증스러움을 대놓고 불편하다고 표현할 순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그런 지점을 섬세하게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연인 메기 질렌할은 이러한 연기를 풍부하게 소화해 냅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냉랭함과 위화감이 자녀들로 하여금 그녀에게 편하게 다가서기 힘들게 만듭니다. 자녀들은 이미 그녀가 자신들을 실망스러운 존재로 생각한다 느끼고 있습니다. 어린 여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만 그녀의 갑작스러운 애정표현을 받아주긴 어려워합니다. 

시 모임에서 그녀는 그저 "아이의 시"를 도둑질하여 자신의 시처럼 발표하는 "아동 착취"하는 사람이자 최소한의 "예술적 의식"이 없는 존재로 취급받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아이의 부모 입장에서는 부모의 동의 없이 핸드폰을 끄고 잠수를 타버리거나, 가족 약속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고, 결국에는 유괴까지 하는 최악의 인물입니다.


제목 그대로 "유치원 교사"인 그녀는 이러한 여러 관계 속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유치원 학생"에게 주목합니다. 만약 그 대상이 "유치원 학생"이 아닌 다른 관계의 사람이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을 것입니다.

그녀는 "교사"로서의 책임감 또한 많이 느낍니다. 자신이 돌봐 줘야만 되며, 다른 사람들은 이 아이의 재능을 무시하고 세상에서 지워 버리려는 악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공감을 잃은 처절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남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가지지 못한 "시적 창작"능력을 아이를 통해 욕구를 해소하고자 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재능 있는 아이이기 이전에 "유치원 학생"인 소년은 "유치원 선생님"의 애정이란 이름의 이런저런 행동에 알 수 없는 표정만을 짓습니다.

영화 포스터부터 스틸컷까지 아이는 선생님을 보지 않습니다. 서로의 시선은 다른 곳을 봅니다.

무한한 애정도 방향이 맞아야 애정입니다


이 영화는 참 재미있습니다.

마지막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심리는 복잡합니다. 그녀는 악인인가요? 나쁜 사람인가요?


애정의 정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과연 상대방을 배려한 애정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같은 애정이라도 다른 사람에겐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을 그녀도 알았다면 보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며 가족의 지지를 받고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적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시간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 관객인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서로 최소 20~30여 년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가치관 속에서 살아옵니다. 

당연히 각자 생각하는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상대방의 가치관에서는 충분히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연인, 가족, 친구, 선후배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가장 무서운 생각은 "나는 너를 충분히 알고 있어. 그리고 난 너에게 많은 애정을 쏟는 거야"라는 마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그러한 애정을 악의가 없다는 걸 알기에 불편하지만 참습니다. 그 뒤 서로가 폭발할 때 서운함과 배신감이 커져 갑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충분한 대화와 감정 교류가 중요합니다. 


이 영화는 "유치원 교사"와 "시 천재 소년"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지만, 결국 진정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릇된 애정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여러분들의 좋아요와 공유,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다른 영화에 대한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오명석


현재 커머스 회사에서 유통 트렌드를 분석, 사내 강사로 활동 중이며 사업/영업전략 내 조직 운영과 제도 기획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약 10여 년 안 되는 기간 동안 국내외, 큰 조직과 작은 조직들을 거치며 

조직 운영 및 인센티브/콘테스트 등 제도 기획

신사업 전략, 기획 / 해외 전시, 의전 

기술/금융 영업, 국책사업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자기 계발과 직장생활, 스타트업과 유통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강연 문의: peter1225.oh@gmail.com)


이외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많아 400여 명의 사회인 독서모임 '성장판'의 공동 운영진(글쓰기 코칭), 30대를 위한 모임 '월간 서른공동 매거진 집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룸하우스만의 영화 투자 성공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