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무수한 독방들이여

-혼자 살기 1

by 푸른향기

물 빠진 신안군 증도면 짱둥어 다리 밑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수없이 파여 있다

허리 숙여 자세히 보니 구멍 둘레 물 조금

발소리 때문인가 쏙쏙 들어가던 게 정지해 있다

죽었나, 코스프레하는 진흙사람처럼 굳어 있다

저 작은 몸에 촉수는 얼마나 길게 뻗어있다는 건가

구멍 하나에 딱 한 마리씩


노을이 밀려와 조금 환하고 안온해지는

저 무수한 독방들




"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난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다. 아, 이 문장 하나가 얼마나 가슴을 쳤던지...


중학교 시절, 두꺼운 책을 끼고 다니며 폼 잡고 다니던 시절(예를 들면 수업 중에도', 아들과 연인' 같은 책을 책상 밑에 두고 몰래 읽곤 했다), 그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었을 때의 격한 감동을 기억한다. 아, 맞아 이런 거야. 삶이란 이런 거여야 해. 모래사장에서 조르바가 췄던 춤, 바람을 맞으며 파도에 쓸리며 가슴을 풀어헤치고 악기를 연주하며 췄던 그 춤이 자유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읽었을 때 그 옛날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는 없었고, 그 장면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버린 탓이겠지만, 왜 바닷가의 그 장면은 찾을 수 없었을까... 혹시 책을 읽으며 내가 상상해 넣었던 장면이었을까...

그러나 그가 맨 마지막 남긴 말이 '자유'인걸 보면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그 감흥이 영 어긋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난 왜 어려서부터 자유롭고 싶었을까. 지금도 난 정말로 자유롭고 싶다. 자유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날만큼.


살아가면서 자유란 정말로 무엇을 원하지 않을 때 조용히 찾아오는 것이란 걸 알아간다. 무엇을 원한다는 것은 지금을 항상 불완전하고 부족한 것으로 만든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때 지금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다. 이때 원한다는 것은 욕심낸다는 것이겠다. 가당치 않은 욕심을 버리는 일,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는 일, 나와 모순되는 욕심을 부리지 않은 일이 필요하다. '지금'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면 지금 이대로가 자유란 걸 느끼게 될까. 책상 위에 써서 붙여 놓았다.




퇴근 후 바닷가를 산책한다. 물이 빠져나가는 서해 바다는 온통 뻘밭이다. 작은 칠게들이 두 손으로 밥을 먹고 있다. 사람이 손으로 음식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가는 모양새다. 자세히 보면 게는 절대로 양 집게다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꼭 한쪽씩 번갈아 가면서 정확하고도 천천히 입으로 가져간다.


칠게의 저녁 식사, 그 동작이 참 숭고하다. 몇 발짝 안으로 들어서니 와, 사방에서 게들이 재빨리 숨는다. 오호라, 저 많은 구멍들이 게의 집이었던 것이다. 해가 바닷물을 끌어올리자 갯벌 위로 무수하게 드러난 구멍들. 어떤 것은 조금 크고 어떤 것은 조금 깊은 듯 , 물이 고여 있다.


게들은 구멍 하나에 딱 한 마리씩 들어간다. 한참을 들여다 보아도 다시 나오지 않는다. 아마 게들은 발자국의 진동이 안전하게 사라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해는 조금씩 져서 뻘밭이 붉게 물들고 있다. 저 무수한 구멍들 속으로 노을이 들어간다. 구멍도 붉다.

-아, 저 무수한 독방들이여!


내가 독방이라 명명하자, 식구들이 낱낱이 떠올랐다. 남편과 아이들과, 그리고 여기 뻘밭 위에 서 있는 나.

마침 우리 넷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살고 있다. 그렇게 각각 살고 있는, 이 살고 있음이 홀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자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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