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이
컵에 뜨거운 물 붓는다
한 계절 우려낸 아카시아 꽃물
담기는 찻잔
손잡이가 없으면 어찌
뜨건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맨 처음 손잡이를 궁리해 낸 사람은
제 몸이 무엇인가로 뜨거웠던 사람이리
몸에 덧댄 손잡이
몸통과 같은 색깔이나
몸통에서 비어져 나왔으나
몸통과 다른 공중 무늬를 만드는
빛 무리 바깥 아들, 나는 네가 있어
그 뜨거운 생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이걸 쓴 것이 언제였을까? 아마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였을 것이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 큰 아이는 학교 기숙사에, 작은 아이는 동네 학원에 가 있었을 시간, 오전 내내 거실 청소를 하고 잠깐 쉴 참에 소파에 앉아서 마셨던 아카시아 차 한잔. 그 차 한잔을 마시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손잡이의 소중함에 대해서.
우리 아파트 뒷산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꽤 있어서 봄이면 흰 꽃송이들이 흐드러지고 향기가 언덕을 타고 내려오곤 했다. 그게 너무 탐스럽고 아까워 우리는 가끔 언덕을 타고 올라 꽃송이를 따서 설탕을 넣고 재여 놓곤 했다. 그것을 겨울에 꺼내어 차로 만들면 향이 정말 좋았다. 꽃향기가 뜨거운 김을 타고 번지는 은은함은 바로 따뜻한 휴식이었다.
휴식을 오래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뜨거운 물을 식지 않게 붓고 천천히 차를 마셔야 한다. 컵이 아주 많이 뜨거울 때는 컵을 통째로 들어 올릴 수는 없다. 컵이 아무리 뜨거워도 손잡이는 아직 뜨겁지 않다. 뜨겁지 않은 손잡이가 있어서 컵을 들어 올릴 수 있다.
맨 처음 손잡이를 컵에 붙였을 사람은 누구였을까... 도자기에 처음 손잡이를 고안해 만들었을 그 최초의 사람. 그는 무엇인가로 뜨거웠던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인가로 뜨거운 사람, 무엇 때문인가로 가슴이 뜨거운 사람, 무엇 때문인가로 인생이 뜨겁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었을까.
그때는 그랬다. 내 인생이 뜨겁다고 생각했다. 뜨거워서 바로 말하기 아픈... 뜨거워서 바로 들어 올릴 수 없는... 내 인생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랬다, 두 아들이 있어 손잡이 같은 두 아들이 있어 내 뜨거운 인생을 들어 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사랑이 돌아서고 나에겐 한없는 의무만 남아 있는 것 같을 때, 아파트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 이해받지 못하는 설움을 눈물로 삼킬 때, 아들이 있어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뜨거운 혀를 품고 있는 사람처럼, 내 말이 너무 뜨거워 누구에게든 함부로 말하지 못할 때 감싸 쥐던 뜨거움을 손잡이가 들어준다고...
그때는 그랬다. 저 시를 쓸 때는...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이제 뒷산도 사라지고 아카시아꽃을 따올 열정도 사라진 나이다.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손잡이는 아들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걸. 나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걸.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조금씩 깨닫는 것이다. 그 엄밀한 법칙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