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사랑할 수 있음은 그대를 늘 먼곳에 두기 때문이다

by 푸른향기

단풍 든다


내 그대를 사랑할 수 있음은

그대를 늘 먼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홀로 저무는 시간들이 산등성이를 한 바퀴 쉬어 돌아

그대 있는 곳까지 다가가면 그새

들끓던 거친 것들 다디달게 익어갔기 때문이다


오늘 산벚나무 끝자락에 단풍 든다

저 잎도 후미진 골짜기 아직 만나지 못한

그 누구 있어 더운 숨 고르고 있는가


수척한 그대 다시 만났을 때

떠나보낸 발신음 잘 도착했는지

안색을 살피곤 하였는데


저 나무는 이제 막 도착한 언어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대, 그이, 당신이라는 말은 참 좋다. 남편이 그대, 그이, 당신으로 머물러 있을 때가 있었다. 쉽게 만날 수 없었을 때, 쉽게 만날 수 없는 시간들은 그리움이 되었고, 더 시간이 깊어지면 간절함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실체와는 상관없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실체 인지도 몰랐다.


후미진 골짜기 숨겨놓은 자리 하나가 있었다. 내 그대를 사랑했던 자리... 먼지 같은 어떤 편견이나 간섭이 쉽사리 들어오지 못한, 아니 들어왔더라도 깊은 정적 속에 그것들이 다 가라앉은 자리... 깊은 정적이란 사람들의 시선을 따돌려서 내 호흡을 가만가만 어루만져주고 다독여주어서 얻어지는 조용하고 비로소 고요해지는 상태를 말함이다.


그 자리에 긴 시간이란 게 느껴지면 나도 한 그루 단풍나무처럼 되는 순간이 있었다. 한 그루 단풍처럼 나의 시간이 무르익어 투명히 붉어지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대가 나의 시간을 끌어당기는 장력이 되고 그 장력을 버티면서 나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는...


그대, 그이, 당신이 남편이 되었을 때, 그리움은 생활이 되었고 일상이 되었다. 그리움이 사라진 자리에 잔소리와 고집과 투정이 들어섰다. 다시 남편을 멀리 밀어내 본다. 남편을 내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포기해본다. 남편은 내가 아니라 남이다.

남편이 내가 아니라 남이라는 사실을 엄밀히 자각했을 때, 나의 생각을 이해받지 못해서 나의 감정을 몰라주어서 생기는 서운함과 억울함은 잠잠해진다. 남편과 내 마음과의 거리감이 생기면 그 자리에 감도는 무엇이 있다. 감도는 그 무엇은 단풍나무의 끝자락처럼 색깔있는 기운이 스며나온다. 그것은 옛날처럼 그리움이나 설렘이 아닐지라도 나의 마음에 틈을 만들어주고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비가 개인 아침, 벚나무 잎이 많이 떨어져 내렸다. 축축한 아스팔트 위로 붉은 잎들이 붙어 있다. 저 떨어진 잎들은 가까움과 먼 것들 사이를 몇 날 며칠 왕복하다 떨어진 것이리... 공기가 어제보다 더 서늘해졌다,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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