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너무 뜨거울 때는 살점을 뜯고 나온다

-고구마를 먹으며 해 본 생각

by 푸른향기

고구마를 굽다


가늘고 길쭉한 호박 고구마를 구웠다

뜨거울 때 먹느라 후후

손 불며 껍질 벗긴다

잔뜩 노란 살이 붙어 나온다

살이 껍질에 붙어나가니

반쪽 뿐인 고구마

하루는 한참을 잊었다 꺼냈다

잘 벗겨지는 껍질

껍질은 살을 놓아두고

살은 껍질을 잊고

서로 조금 다른 것이

본래를 찾아갈 때까지

부풀어 오른 공기층이

알맞게 들어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껍질이란 무엇이 채워지면서

가장 바깥으로 밀어내는 말,

말도 너무 뜨거울 때는

살점을 뜯고 나오기도 하는 것

나 옛날 뜨거웠던 말들을 생각한다

식지 않은 말로 얼마나 많은

피 묻은 설점들을 뜯어냈던가를




그랬던 적이 있다.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넣기 위해, 아니 당신에게 나를 납득시키기 위해, 아니 그보다는 당신이 잘못한 거라고 그러니 미안하다는 말을 받아내기 위해, 바닥까지 드러내며 싸울 때가 있었다.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했는데 사랑했던 것만큼 무수히 많이도 싸웠다. 마치 그것이 사랑이란 일인 것처럼.


되돌아보면 그때 했던 말들은 나의 과거와 상대방의 과거까지 후벼 파는 말들이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말이 칼처럼 독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더 시간이 흘러서야 그 말을 되새기지 않을 용기가 생겼다.

상대방의 마음은 결코 나의 독한 말로는 열려지지 않았다. 아무리 독하게 쏟아내도 나의 살점만 뜯겨나올 뿐이었다. 상대방이 조금씩 문제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는 건 그 말의 해독작용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효과였다. 시간이란 것이 말을 식혀주고 말로 인한 상처를 낫게 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유독 식어가는 것에 마음이 쏠린다. 식으니 잘 벗겨지는 고구마 껍질도 그렇고 식으면 잘 까지는 계란 껍질도 그렇다. 그리고 햇빛에 오래 마른 마늘과 양파도 그렇다.

계란은 삶아서 뜨거울 때 재빨리 찬물에 담가야 한다. 계란 몸에 들어가 있는 열기를 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참후에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우연히 찬물에 담그는 것을 깜박하고 그대로 두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식으니 찬물에 담갔던 것처럼 껍질이 잘 까지는 것이었다. 식지 않은 계란을 깠을 때 붙어 나오는 흰 살점. 식지 않은 계란은 하얀 막을 내놓지 않는다. 양수막 같은 흰 계란막은 다 식었을 때라야 껍질에서 살에서 놓여난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픈가? 그것도 가만히 놓아보는 연습을 해본다. 마음이 아프다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후벼파고 왜 그런지 추궁하고 언제 괜찮아질런지 조급해하지 말고 가만히 놓아보자. 시간을 느껴보자. 내 마음이란 것을, 아니 지금의 상태를 시간 속에 가만히 풀어놓아 주면, 반드시 딱지가 생길 것이다. 딱지에 공기층이 생겨 가만히 안쪽 살을 놓아줄때 내 마음도 괜찮아질 것이다. 그럼 괜찮아질 것이다. 오랜 가을 장마 후 , 비 개인 오늘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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