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의 재취업 후 깨달은 것들.
퇴사 후 아이만 키우다 7년 만에 재취업했다지만, 육아 휴직 기간을 더하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그러니까 10년 만의 출근이었습니다.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저때는 초봉 3천의 대기업도 드물었는데, 요즘 대기업은 초봉이 6천부터 시작한다죠? (물론 제 연봉은 그대로입니다.) 세상은 변해있었고, 저 같은 MZ의 마지막장 80년대 초반생들은 이제 관리자 세대로 넘어가있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입사했을 당시 함께 했던 동기들 중에 직함을 빨리 단 친구는 상무가 돼있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변치 않는 게 있었는데, 바로 '힘든 일은 없다. 힘든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회사생활의 진리였습니다.
10년 만에 만난 상사는 사람 괴롭히는 법과 성과 내는 법을 굉장히 잘 아는 능력자이자 독재자였습니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추궁했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대신 현실 희생과 현실 포기를 요구했습니다. 지금 네가 갈아 넣은 청춘이 미래의 팀장이고 임원이다라는 청사진을 이야기했죠. 그래서 남들보다 뛰어나기 위해서는 조근이나 야근은 필수라고 이야기했고, 가끔은 주말등산을 요구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퇴사하는 것까지 보게 되었죠.
저는 어땠냐고요?
다행인 건 10년 만에 출근하는 동안 경력단절로 나의 업무역량은 그대로 이거나 혹은 후퇴했지만, 인생 경력은 만렙을 찍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불의에 굴복하기, 의견 숨기고 동조하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등의 테크닉으로 상황 상황을 무사히 넘겼습니다. 젊었을 때의 저는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자주 회식과 음주를 강요하는 팀장에게 "팀장님, 원래 불화가 많은 가정일수록 가정대소사나 함께하는 식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이야기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시키는 팀장에게 "저는 못하겠습니다. 대신 고과를 까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 듯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의 정신으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폭풍이 불면 부는 대로 납작 엎드려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스스스 일어나는 잡초처럼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어쩜 내가 집안에서 독재자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자꾸들었습니다. 어제 아이학원에 픽업을 갔다가 한 엄마의 전화통화 내용을 몰래 옅든다가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거든요. 바로 성과중심주의 엄마는 독재자 악덕상사와 너무 닮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엄마의 통화내용]
시험결과 나왔어? 뭐? 점수가 그따위야? 야! 근데 지금 뭐 해? 어? 그냥 있어? 빨리 앉아서 문제집 펴. 안 그래도 아빠가 너한테 교육비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난린데 너 점수 이야기 하면 아빠 당장 끊으라고 난리 친다. 아니다. 한 번만 더 그 점수 나왔는데 놀고 있으면 엄마가 다 끊어버릴 거야.
아래는 악덕상사가 자주 하던 대사입니다.
[악덕상사]그래서 이번달 수주건 얼마야. 뭐? 월 수주 목표가 얼마야? 그런데 지금 가만히 있어? 빨리 대책 보고 준비해서 당장 내방으로 가져와. 프로모션비용을 비용대로 다 쓰고 결과가 이모양이야? 안 그래도 본사에서 예산삭감 하라고 지랄인데, 이따위로 할 거야?
생각하다 보니 닮아도 너무 닮았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애를 다시 일으켜 세워 학원 뺑이돌리기는 9-6을 풀로 일한 직원을 야근시키는 것과 닮았습니다.
지나친 선행은 목표달성한 직원에게 더 과한 성과를 요구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모든 것을 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모든 것을 성과가 지표로 평가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을 위해 현재를 포기하라는 것은 미래의 임원이 되기 위해 청춘을 갈아 넣으라는 악덕상사와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직장인 나는 주 4일째를 외치지만, 엄마인 나는 주말에도 아이를 학원을 보내려 합니다.
문제는 말이에요, 회사에서는 견디다 보면 좋은 상사도 만날 날이 오지만, 부모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역시도 어쩌면 성과 중심적인 독재엄마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중학교가 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키운다는 엄마들은 죄다 이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저 역시도 제 아이들의 목표를 그 학교로 선택했습니다. 잘나가던 회사도 관두고 애만 키웠잖아요. 아이의 성과가 제 성과라고 착각했거든요. 그래서 수학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느린 아이를 잡고 중학교 입시 준비를 시켰더랬죠. 아이는 떨어졌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경험하지 않아도 될 패배를 맛보고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심리상담결과 제 아이는 잘하는 것은 운이 좋아서라고 이야기 하고, 못하는 것은 나는 느리고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제 아이는 성과 중심적인 악덕 상사 엄마를 만난 덕에 자신감을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재 취업을 하고 알게 된 것은. 이제 사회가 노동자의 워라밸에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아직 학생들에게는 혹독한 성과중심주의를 강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면에서는 어쩌면 엄마라기보다는 악덕상사에 가까웠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회사에 출근한 지 일 년 칠 개월째입니다. 그 사이 아이는 혹독한 겨울같은 중학교 2학년을 지났고, 아이들을 키우며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미처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쩜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법륜스님이 그랬거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뜨거운 사랑이 필요하지만, 중학교부터는 차가운 사랑이 필요하다고요. 신경을 덜 쓰다 보니 잔소리가 줄었습니다. 악덕 상사를 만나보니, 나는 어떤 엄마였나 고민하게 됩니다.
법륜스님은 말씀하셨죠. 그대는 부모인가요? 학부모인가요?
나는 나에게 자문합니다. 그대는 부모인가요? 상사인가요?
*본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별처럼 많은 좋은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