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주는 의미
나는 직장으로 왔고 아내는 집으로 갔다.
피검사 결과는 전화로 알려주기로 했다.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내의 전화를 기다리는 남편.
우리는 서로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능 전 날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임용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것처럼.
오랜만에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평소 같으면 정신없이 학교 생활을 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의 진동을 느끼기 위해 미세한 감각을 집중했다.
이 미세한 감각은 화장실이 급할 때만 썼는데 이렇게 쓰다니.
스마트폰의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를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안 좋은 이야기면 어쩌지?
우리 아내의 눈물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난 뭐라고 말하면 좋지??
난 자기만 있어도 좋아라고 말할까?
아니면 다음에 또 하면 되지라는 무책임한 말을 할까?
이번에 되면 로또 확률이니까 다음에는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말할까?
사람이 참 그렇다. 한 순간에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순간 나를 이 대화의 제삼자로 설정하고
뭐라고 말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이 안 되었다면..
사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아쉽다고.
그리고 같이 울려고 했다.
미안하다고...... 오빠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이 짧은 순간에 내가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 여러 실패의 순간마다 나의 무기력함을 탓했다.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울었다.
첫 단어는 오빠였다.
근데 울음이 달랐다.
나도 울었다.
교무실에서 전화를 이어 갈 수 없어서 학교 옥상으로 갔다. 그리고 울었다.
그냥 왜 울었을까.
숫자 300. 영화의 숫자 300이 떠올랐지만 그냥 웃었다.
피검사 숫자가 300이라고 했다.
임신이라고 했고, 병원의 전화를 들은 우리 아내는 테스트기를 바로 했다고 했다.
두 줄이었다.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은 내 마음속에 남았다.
난 집에 와서
5년 전에 졸업한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찾아와 주었던 애기 신발을 만져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 되었다.
내가 태몽을 꾸었다. 너구리 두 마리가 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 마리는 리더십이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착하다는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왜 두 마리 일까???
이제 우리 아내는 음식을 먹고 기침을 하고 화장실을 뛰어간다.
난 황제펭귄이라고 놀리고....
한 대 맞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음파 사진을 보고 웃는다..
임신한 아내의 남편 관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