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이곳에서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비수기라 하루의 삼분의 이 정도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은 셈이다.
읽을 책을 세 권이나 가져왔지만 내 책 대신 카페 한편에 꽂혀있는 다양한 책들에 손이 간다.
한창 아르바이트를 했던 대학교 2학년 이후 거의 5년 만에 커피를 다시 내려보게 됐다.
방법이 거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카페 언니의 도움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직접 내릴 수 있었다.
커피를 못 마시는지라 직접 입을 댈 수 없었던 건 아쉽지만.
언제쯤 내 몸이 커피를 받아들여줄까.
아직은 어색한 카페 언니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취미는 뭐냐, 좋아하는 건 뭐냐, 하고 싶은 건 뭐냐 등의 여러 질문들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여태껏 딱히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건 싫어하는 것 빼고 전부라 고를 수 없고,
하고 싶은 건 많았지만
지금 와있는 이곳에서 굳이 하고 싶은 건 없음을.
생각보다 더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낼 것만 같다.
그렇게 미뤄오던 양초 만들기를 해볼까. 신기하게도 재료가 이곳에 다 있다.
매번 하고 싶어도 미루기만 해왔던 건데 재료까지 갖춰져 있으니 내가 시도할 일만 남았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네 어느 밭에서 주워오셨다는 감자들로 만든 감자전,
문어가 들어가 제대로 붉은색을 보이는 문어라면,
그리고 한라산 소주 대신 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