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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Mar 04. 2022

발리 요가 첫날, 이렇게 힘든건지 몰랐다

발리YTT(1)

발리 생활 일주일째, 리조트에서 녜삐데이를 보내고 다음 일정을 고민했다. 첫번째 후보는 서핑이었다. 수영도 못하고 물을 무서워하는지라 두려움은 있지만 발리까지 왔는데 서핑도 못하고 가는건 용납할 수 없다.


발리에서도 누사쁘니다 섬은 꼭 가봐야 한다고 해서 누사쁘니다 섬 안에 있는 서핑스쿨을 찾아냈다. 2박을 하면서 서핑도 배우고 섬도 둘러볼 생각이었다. 어제 연락했는데 녜삐데이라 인터넷이 안됐다고 오늘 아침 연락이 왔다. 당장은 예약이 안되고 내일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안된다면 일단 보류.


누사두아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 거리, 발리 사파리 근처 해변에 있는 요그만트라발리(Yogmantra Bali)에서 2~3일 머물면서 요가를 맛보고 관광도 할 생각에 문의를 넣었다. 3일에 요가수업+숙박+관광까지 350달러짜리 팩키지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긴 통화끝에 결국 선택한건 12박13일 요가티쳐트레이닝(YTT) 100시간 코스. 아침 6시부터 시작해 저녁 8시까지 스파르타식으로 내내 요가 전문가를 만드는 과정이다. 매달 1일 시작한다기에 안될줄 알았는데, '마지막 기회(last chance)'라며 할인까지 해주겠다고 한다. 녜삐데이라 하루는 쉬었으니, 남들 졸업하고 이틀만 따로 더 수업을 들으면 된다고 한다. 가격은 650달러, 알아봤던 YTT 코스들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가격이다. 전화를 끊기전에 '수강신청!(I will take it!)'을 외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후 1시 요가스쿨에 도착했다. 당일예약으로 온 사람은 요가원이 문을 연 이래 역사상 내가 처음이라고 한다. 워크인(Walk-in)으로 간 것도 아닌데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방 배정을 받았는데 카드키가 안먹힌다. 오늘까지는 마스터키로 열어준다고 한다. 강의노트도 나만 없다. 갑자기 왔더니 전혀 나를 맞을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아무렴 어떤가. 받아줬으니 감사할뿐이다.


하루 세 끼 식사가 모두 제공된다. 단, 전부 채식이다. 아침을 굶고 달리기를 해서 상당히 배고팠는데, 풀떼기만 나온다. 그래도 맛있다. 다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육식주의자'인 내게, 채식은 큰 변화다.


밥을 먹고 Ayurveda(인도 전통 의학서적) 수업을 들었다. 이론 수업과 몸을 쓰는 수업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얼마만에 듣는 수업인지, 영어로 들으니까 카투사 시절 전투 훈련(Battle drill)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역시나 이론 수업에 집중못하는건 여전하다.

다음 시간은 아쉬탕가. 처음 들어봤다. 알고보니 악명이 높은 과목이라고 한다. 몸을, 격하게 쓰는 수업이다.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따라하는건데 안쓰던 근육을 쓰는 자세들을 취하다보니 땀이 줄줄 쏟아진다. 땡볕에서 달리기를 해도 이렇게 땀이 나진 않는데 말이다.


특정 자세를 취하고 선생님이 카운팅을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육군 훈련소가 떠올랐다. 헬스장에서 PT를 받을때, 도수치료센터에서 운동치료받을때도 생각났다. 어리고 날씬한 친구들이 잘도 따라한다. 나는 팔다리가 후들후들 이악물고 버텼는데 말이다. 이틀 수업 더받은 '짬'의 차인가.


끝나고나니 다들 내게 어땠냐고 묻는다. 거의 죽을뻔했다. 첫날보단 다음날이, 그다음날이 더 편해진다고 위로를 한다. 아무래도 안쓰던 근육들을 자극하고 펼쳐주니 힘든가보다.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 막연히, 발리에서 200시간 요가티쳐트레이닝 코스를 이수하고 강사 자격증을 훈장처럼 달고가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는 왜 스스로 훈련소에 입대하냐며 '비추'했다. 막상 와보니 재밌는게 너무 많아 요가는 뒷전으로 미뤄뒀다.


하지만. 어제 리조트 자체 프로그램 '맛보기 요가'에 참가한 게 문제였다. 아침 7시에 갓 떠오른 해를 배경삼아 해변에 매트를 깔고 경직된 근육을 쭉쭉 풀어주니 깊이 배워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핑스쿨도 오늘 당장 입소가 안된다고 하고, 요가스쿨은 파격할인까지 해주겠다는데...3박자가 맞아떨어졌다.


당장 내일 아침 6시에 명상으로 시작해 Yin yoga로 아침먹기 전부터 땀을 뺄 예정이다. 아침 먹고는 요가철학, 인체학 수업을 듣고 Vinyasa(?, 아직 뭔지 모름)로 땀을 또 뺄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선 오늘 했던 지옥훈련이 반복될 것이다.


이렇게 12일을 더 보내야 한다. 먹으면 바로 배고프지만 맛있는 채식을 35끼 더 먹어야 한다. 그동안 술도 못마신다. 요가가 이렇게 힘든거라고 왜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 돈 내면서 자원입대한 기분이지만, 다가올 변화가 기대된다. 고기끊고 술끊고 운동을 이렇게 하루종일 하면 적어도 5kg은 빠지지 않을까? 10kg까지 기대해본다.


요가는 '몸'에 집중한다. reflex를 강조한다. 뼈와 근육이 불편하지 않도록 제대로 사용하고 무리하지 않는 법을 가르친다. 몸을 다루는 법을 배워 삶과 인간관계에도 적용하라고 한다. 누군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최대한 피하는 게 좋다. 무리해서 강행할 경우 탈이 나기 마련이다.


이제 자유시간이 얼마 없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면 오후 8시다. 다음날 5시30분에 일어나려면 12시쯤에는 자야 한다. 쉬는 시간의 소중함, 그 달콤함을 오랜만에 되새긴다. 4시간 남짓한 시간을 더 알뜰하게 쓰게 될 것 같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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