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검색창에 '강원도 사람 없는 바다'라고 적자 관련된 글들이 많이 보였다.
나와 같이 혼자이길 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렇게 손쉽게 찾아낼 수 있는 곳이라면 이미 그곳은 혼자인 사람들을 위한 곳이 아닐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다 카테고리를 바꿔 누군가들이 올려놓은 바다 사진들을 둘러봤다. 마우스의 스크롤을 계속해서 내리다 작은 해변이 찍힌 사진을 한 장 보게 되었고 클릭을 하자 게시물로 이동이 됐다.
내가 보았던 사진 이외에도 자신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자랐다던 동네의 모습이 사진 곳곳에 담겨 있었다. 나의 시선을 끌었던 해변이라고 하기엔 작아 보이던.
글쓴이는 그곳의 이름을 '파도해변'이라고 불렀다. 정식명칭은 아니고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곳이라고. 글을 적는 이유는 꽤 길고 구체적이었다.
어릴 적 이곳을 벗어나는 게 꿈이자 목표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작은 구멍가게 하나 없는 동네였기 때문에 배달을 시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작은 가게라도 가려면 걸어서 한 시간은 이동했어야 하는 그만큼 정말 외진 곳이라 그래서 서울에 살아보는 것이 자연스레 삶의 목적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원하는 대로 성인이 된 후 원하던 대로 서울 살이를 시작하게 되자 모든 게 행복했다고 말하는 이에게서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작성자는 눈앞에 펼쳐지는 도시의 수많은 빌딩들, 도로를 가득 매운 차들의 경적소리 마저 오케스트라의 합주 연주처럼 들렸다고. 시골의 수많은 별빛들이 펼쳐놓은 밤하늘 보다 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도시를 환하게 밝히는 곳곳의 수많은 조명들이 아름다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외로움도 힘든 마음도 사라졌다고 그랬다.
터를 잡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룬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오래전 느꼈던 벅찬 감동은 사라진 것 같다고 오히려 공허함을 채워 주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린 서울을 떠나게 됐다고 적었다.
글쓴이는 그렇다고 서울이 나쁘다는 건 아니라며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별이 큰 몫을 했다며 서울 생활을 끝내고 그토록 싫어하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긴 글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하는 생각은 끝에 적어진 것을 보고 알 수 있게 됐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 길이 뚫렸고 덕분에 이동 거리도 많은 단축되었다고.
작은 가게도 생겼으니 만족한다던 이는 자신이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하게 됐는데 솔직히 볼 건 없지만, 작은 해변만큼은 그 어느 곳에서 보았던 곳 보다 아름답고 마음을 편안한 게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말로써 마무리 됐다.
새벽녘 작성된 글엔, 관리자로 보이는 이가 불과 몇 분 전 남겨놓은 댓글을 볼 수 있었다.
'게시물 위반 정책으로 인해 삭제될 예정입니다.
홍보 게시물은 사이트 담당자에게 상담 후 진행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상담은 유료 결제를 의미하는 바였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시간대에 작성된 탓이었는지 조회수는 나를 포함해도 몇 이상 되지 않았다.
글 하단에 적어진 연락처를 메모장에 저장했다. 이곳이라면, 내가 찾는 곳일지도 몰랐다.
늦은 점심을 먹은 뒤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연락을 해야겠다 생각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이라고 해서 별건 없었다. 컵라면을 준비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받아 전원 버튼을 누르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작동이 시작 됐다. 끓고 있는 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침대 위에 올려둔 휴대폰을 가지러 가는 동안 전화가 끊겼고 곧이어 메시지가 왔다.
호진선배의 연락이었다.
"연재야, 소식 들었어? 아니지, 들었을 리가 없지. 현주 어머니 조금 전에 돌아가셨어. 어제까지도 괜찮으셨다고 하던데 그래서 현주도 많이 놀란 것 같더라.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현주는 곧장 가족들에게 갔고, 장례식장 정해지면 나도 동료들하고 저녁 시간 맞춰 함께 가기로 했어. 같이 가자. 주소 나오면 다시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멍하니 창가를 바라봤다.
물의 온도는 적정선에 다다랐는지 큰 소리를 내며 이내 전원을 꺼트린다.
어쩌면 나 역시도 예상했던 순간 중의 하나였던 상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빠른 순간에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불과 이틀 전 마주했고 하루 전까지 연락했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이 채 남지 않았으니 귀찮게 하는 일 없다고 말하던 분과는 정말 짧은 연락만을 주고받은 채 끝이 나고 말았다.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호진선배와 함께 장례식장에 가는 게 맞을지, 현주 씨가 나를 보며 당황하지는 않을지.
무엇보다 부모님의 장례 이후로 장례식장엔 가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가보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게 아니라 나는 그곳이 무서웠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몇 달 사이 연달아 보냈던 두 분에 대한 슬픈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그 후로 피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매일 마주하는 곳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더 용기를 내지 않고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주저함은 나에게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갖게 만들었다. '내가 가는 것을 불편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지 않는다면 그건 나의 주저함이 아니라 상대방이 불편할 것이라 여기는 마음 때문이라고.
뜨겁던 포트의 물은 미지근해졌다. 먹기 위해 꺼내둔 것들은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였다.
걷어둔 커튼을 한껏 당겨 들어오는 햇살을 막았다. 침대 이불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 어차피 나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현주 씨의 말대로 아무런 사이도, 신경 써야 하는 관계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 눈을 감았다. 잠을 자려고 시도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또 한 번 진동음이 울렸다. 일부러 받지 않았다.
누구인지 예상 가능 했기 때문이다. 커튼 사이로 스며들던 햇살이 점차 줄어들어갔다.
조심스레 핸드폰을 찾아 화면을 보자 예상대로 호진선배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연재야 전화를 안 받네, 주소 보내놓을게. 이곳으로 오면 돼.
몇 시간 뒤 또 한 번의 진동벨이 울리고 곧이어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재야 바빠? 지금 장례식장 도착했어. 현주 얼굴이 많이 안 좋더라, 오늘 안되면 내일이라도 들르면 좋겠네. 시간 될 때 전화 한번 해줘."
계약하기 위해 부동산에서 처음 만난 옥탑방 주인 할머니는 서울사람이 아닌 내게 이것저것 질문 할 수도 있었지만 그저 도장을 찍고 계약서를 나눠 가지며 "잘 지내요." 하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홀로 맞이하는 첫 명절.
텔레비전 속에선 뭐가 그렇게 다들 행복한지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다 전원을 꺼버렸다.
가만히 누워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 못 들은 건가 싶은 사이 또 한 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누구세요?" 하며 물었다.
"집에 있어요?"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할머니의 시선은 자연스레 내부로 향했다. "명절인데 안 내려갔어요?"
"네. 두 분 다 일하시기도 하고 다음에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할머니의 품에는 야채들이 담긴 바구니가 보였다. 아마도 옥상 텃밭에 들렀다 인기척 소리가 들려서
온 건가 싶었다.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들로 보이는 이가 계단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쉬어요 그럼."
집 앞 공원에 나가볼까도 했지만 생각에서 멈추고 말았다. 결국 다시 텔레비전의 전원을 켰다.
한 방송사의 특집 프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명절을 보내는 일반인들의 가정을 찾아 인터뷰를 하고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무작정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초인종을 눌러 방송 내용을 설명하고 가능한지 확인을 하고 했기 때문에 거절하는 분들에게도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며 명절 선물세트를 건넸다.
방송 참여를 하게 되면 간단한 게임 후 경품까지 지급했으니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에 좋아 보였다. 문제는 진행자가 미리 준비해 둔 뽑기 통을 참가자가 뽑아 진행을 했다. 문제들은 대게 간단한 것들이었는데 '아내가 좋아하는 꽃은?' ,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 제목은?' 어떤 가정은 문제를 내자마자 순식간에 맞춰 서로 껴안고 기분 좋음을 드러내는가 반면, 문제를 맞히지 못하는 남편과 아내의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마저도 보는 사람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이었다.
창문 너머로는 할머니의 목소리 이외에도 손자손녀들과 함께인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소리는 얼마가지 않아 잠잠해졌다.
보던 것을 멈추고 저녁 준비를 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지만 마땅히 먹을 것이라고는 없었다.
고민을 하는 동안 문밖에선 또 한 번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나와봐요."
"무슨 일이세요?"
"이것 좀 먹어요. 워낙 손이 커서 준비를 하면 뭐든 많이 해가지고,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괜찮아요. 전 드릴 것도 없는데요."
"뭘 받으려고 주는 건가. 주고 싶어 주는 거지. 어서 받아요 나 손 아프니까." 엉겁결에 보자기를 받았다.
할머니가 떠난 뒤 보자기를 펼치자 전부터 나물까지. 국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릇에 담긴 밥 한 그릇이 보였다. 그릇을 만지자 느껴지는 온기에, 따뜻함도 잠시 바보같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밥을 먹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낯선 곳에 홀로 떨어져 있는 나 자신이 싫었고 나를 두고 떠나가버린 두 분의 부재가 원망스러웠다.
어느 하나 나를 찾는 이도 없는 것 같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날을 계기로 이따금 과일들을 봉투에 담아 우리 집 문 앞에 걸어두거나 명절이 찾아올 때면 보자기에 싼 음식들을 내게 건네주었다. 한 번은 궁금해 물은 적이 있다.
"저를 왜 챙겨주시나요? 혹시 월세를 올리시려고 그러시는 거면."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등을 내리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머무르는 동안 월세는 단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일 년만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이 정도 금액을 맞춰 다시 찾기란 어렵다고 느꼈다. 그렇게 한해 두 해를 보내고 나니 어느새 긴 시간이 흘러 있었다. 직장을 옮기고 거리가 멀어져 계속 지낼 수 없는 환경이 되자 이번 계약이 종료되면 집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주인 할머니는 좋은 일로 가는 것이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다른 질문은 하지 않고 그저 알겠다는 말뿐.
계약 종료가 가까워져 가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 동안 골목 사이로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내가 머무르는 건물 앞에서 멈추었다.
다급하게 올라오는 사람들 소리와 뒤 이어 할머니 가족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누군가 구급차에 실리고 문이 닫히는 것을 보게 됐다. 며칠 뒤 구급차에 실려가던 사람이 주인 할머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땐. 마음속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오시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가 관리하던 건물은 아들이 맡게 됐다. 이사는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당일날이 되자
옥탑방으로 찾아온 아들과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누게 됐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면 이사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을 거예요. 다른 방들 월세 올릴 때에도 옥탑방은 그대로 두자고 해서 제가 물은 적도 있거든요. 그분이랑 아는 사이냐고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 말라 완강하게 말하셔서 저도 수긍했죠. 그리고 이건 바빠서 미루다 어제저녁에서야 집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안방 서랍 속에서 발견했어요. '옥탑방 청년에게'라고 적혀있더라고요. 편지인 것 같은데 한번 읽어보세요."
1톤 트럭에 담긴 이삿짐은 정든 동네를 떠나 새로운 동네에 발을 내디뎠다.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이 하루빨리 익숙함이 되길 바랐다.
정리를 끝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은 뒤 편지를 꺼냈다.
'처음 봤을 땐 무슨 사정이 있나 싶을 만큼 표정이 어두웠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도 못 뵈고 혼자 명절은 보낸다고 하니 음식을 챙겨주었는데 깜박하고 못 넣은 게 있어 챙겨주는 거 제대로 해주자고 그날 한번 더 옥탑방에 찾아갔다 우는 소리를 듣게 됐어요.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밖에서 듣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지 뭐예요. 그리고 알아챘어요. 무슨 사정이 있어 서울로 왔나 보구나.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오던 게 생각나 계속 눈에 밟혔어요.
뭐라도 챙겨주고 싶으면서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에 주책맞게 행동하는 것 같아 그만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언제였는지 오래전이라 이제 기억도 나지 않지만,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이른 새벽부터 옷을 챙겨 입고 공원을 가려고 나왔는데 계단 청소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또 텃밭 잡초들을 정리해 주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는 체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사람은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답하는 사람이구나 했으니. 이사를 간다고 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잘돼서 떠나는 거라면 축하해주고 싶네요. 이곳이 생각나면 언제라도 편하게 놀러 와요. 할머니 집에 온다고 생각하고, 그럼 웃으며 반겨줄게요. 그리고 다 늙은 사람이 괜히 잔소리한다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면 좋겠어요.
살아보니 그래요. 사람을 멀리하며 살고 싶다가도 내 삶을 살아가게 해 주었던 것도 사람이라 이 긴 인생을 버텨낼 수 있었어요. 그러니 마음을 너무 닫아두고만 살지 말아요. 잘 지내줘서 고마웠어요.'
이 순간, 옥탑방의 기억들은 왜 떠올랐을까.
남겨진 편지가 내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만 주저하고 물러서게 되는 건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 오래 전의 기억 때문 일 것이다.
전날 현주 씨의 어머니에게 보냈던 메시지를 읽었다. 무슨 바람이 들어 그런 답을 보냈을까,
나 스스로가 변하고 싶어서였을지, 단순히 부모님 생각 때문이었을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감정이 섞여 들어 그렇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주인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내게 무언가를 주고 떠난 것 같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장례식장에 가지 않은 것을 아직까지도 후회하고 있으니까.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를 전했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같은 실수는 하지 말라고 과거의 기억이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튿날 오후,
장례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화면에는 현주 씨 어머니의 얼굴과 이름이 보였다.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되는데 이곳까지 와서 망설이게 된다.
몇 분을 서성이는 사이, 누군가 나에게 다가왔다.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연재 씨"
현주 씨였다. 많이 울었는지 눈이 부어있는 게 보였다.
"호진 선배한테 연락받았어요. 그래도 와야 할 것 같아서요."
짧은 대화를 나누고 뒤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을 마주한 뒤 안내된 자리에 앉자 장례를 도와주는 이모님은 한분이냐며 현주 씨에게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선 "저 밥 안 먹어 돼요. 왔으니 됐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드세요. 엄마가 연재 씨 밥도 안 먹고 가면 많이 서운해할 거예요."
우리 둘 사이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엄마가 많이 좋아했어요. 그날 저녁 몸 상태가 회복되고 연재 씨 이야기만 했으니까요. 망설이기만 하다가 함께 가지 않고 엄마를 떠나보냈더라면 전 평생 후회하고 살았을지도 몰라요. 아빠도 그러셨거든요. 네 엄마가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낸 것 같다고."
어머니와 나 사이에 연락이 오갔던 것을 말해야 할까, 아니면 이미 알고 있는데 모른 체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를 배웅하러 나온 현주 씨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연재 씨와 저는 평범하게 만날 사이는 아닌가 봐요, "
이 말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현주 씨. 저랑 어머니 두 사람이 남아서 대화를 했을 때 말이에요. 전 알 수 있었어요. 사랑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현주 씨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예요."
갑작스러운 나의 말에 현주 씨는 배웅하던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재킷 소매 안쪽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그리고 더 이상의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저 먼저 들어가 보도록 할게요. 이야기하다 보면 더 괴로울 것 같아요. 조심히 가세요."
현주 씨는 고개를 숙여 내게 인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남겨진 자리에서 현주 씨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가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땐 여느 다른 남녀처럼 평범한 만남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