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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눌프 Nov 16. 2019

굳어진 마음을 녹이는 용기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음이 돌덩이처럼 굳어져서 모든 감각과 감정에 무뎌지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분명 감정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보통의 때라면 타격감이 컸던 그 감정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을 만큼 메마른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데 ‘내가 너무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보다 오히려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삶이 오히려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그 이전에 얼마나 많은 감정의 굴곡들이 나를 괴롭혔는지, 감정에 휘둘리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보냈는지에 대해 곱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는 편이 나에겐 더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오해 속에서도 나는 해명하고자 노력하지 않았고 나를 방어하지도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날 때도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보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늘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원했던 과거의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이 다가올 일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이 시간들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나에겐 오히려 좋았던 이 상태가 싫어지기 시작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내 태도를 발견하면서부터였다.


타인의 고민거리가 우습게 여겨졌으며 어떠한 공감도 되지 않는 태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작 그런 거 가지고 뭐.’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무서웠다. 이해를 하기보다는 훈계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다 내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하든 부재하든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언제든 바꾸어 놀 수 있는 무서운 것이었다. 강제로라도 굳은 마음을 녹이지 않으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나에겐 씻을 수 없는 후회를 남길 것 같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수없이 괴롭히는 것이 되기도 하지만, 그 괴로움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또다시 울고 웃고 분노하며 때로는 즐거울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굳어진 마음을 녹이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이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겐 오히려 유익했다. 굳어진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과정들에는 많은 모험이 필요했으므로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평온함보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희생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 삶의 불가항력적인 자연법칙을 거스를 순 없었다.


굳어진 마음을 녹이고자 하는 용기도 결국 사랑을 회복하기 위함이었으며 굳어진 마음을 녹이기 위하나 위험한 모험에 뛰어드는 것도 사랑을 위함이었다. 또다시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견디기 버거운 순간들을 번복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명백한 순환 궤도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해 늘 도전하고 모험을 하는 것이 사람이며 삶이다.


이타적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의 평온을 내려놓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감정의 무뎌짐으로부터 온 평온함이 나를 위한 상태이긴 했지만 그것이 나 자신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삶의 시작은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만 때로는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한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은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우리의 감정이 남겨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사랑은 모든 감정을 포용할 수 있는 가장 넓고 깊은 감정의 부모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늘 사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어떤 그리움과 회귀본능이 잠재되어 있다. 사랑으로 아파하지만 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때문이다. 사랑은 자신을 포기하지만 또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는, 비움과 채움이 공존할 수 없다는 인간 사회의 규정되고 계산된 법칙을 파괴시키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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